‘실험’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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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077회 작성일 08-09-19 22:02본문
질문 두 가지 드립니다.
無心 08-09-16 11:26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 유 일입니다.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글도 몇 번 남기고 싶고 문자도 보내고 싶고 한데, 별것 아닌 일에 힘쓰실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가 이렇게 글로나마 인사 드려요. 문자 보내고 안부 글 쓰는 게 저는 늘 힘들어서 명절 때면 인심 많이 잃습니다.ㅎㅎ 질문이 두 가지 있습니다.
저 교사인데요.(기억하시죠?) 강연을 들을 때는 선생님 앞에선 긴장돼서 그런지 다 잊어먹어서 별일 없다고 말씀 드렸으나, 가만 생각해 보면 매일 수업 준비에 온몸이 타들어가고 새벽에는 학교 가서 성공적인 수업을 해야 된다는 압박감에 악몽을 꾸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게 거의 매일이니 많이 힘들긴 했었나 봐요. 그런데 사실 요즘은 학교에서 간단하게만 수업 준비 마치고는 집에서는 더 뭔가 용을 쓰지 않고 그냥 앉아서 생각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입술이 타들어갈 시간에 그냥 앉아 있습니다. 마음은 편하던데 정말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 싶은 생각도 있고, 학교생활 외에 제가 하는 공부들도 다 손을 놓아버리니 조금 불안감도 있구요.
또 한 가지는 제 취미생활입니다. 요즘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걸 너무 좋아해서요. 사진이 의도된 대로 찍히면 그게 너무 신기하고 즐겁더라구요. 그래서 돈을 들여 장비도 좋은 걸로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외면적으로 추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 반대쪽으로 생각하면 그냥 하고 싶은 마음을 따르는 건데 싶기도 하구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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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때로 자기 자신을 ‘실험’해 볼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이를테면, 지금까지 하지 않던 일을 문득 시작해서는 꾸준히 한 번 해본다든가, 혹은 반대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해오던 일을 어느 순간부터 문득 하지 않고 있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러면 참 여러 가지로 불안한 생각과 마음들이 많이 일어날 거예요, 그죠?
그런데 그때, 불 일듯 하는 그 불안과 온갖 생각들을 어떻게 하려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내어버려둬 보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빚어지는 혼란과 혼돈과 모호함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낱낱의 것과 함께 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실험’하는 것인데요....
이때 ‘기간’도 참 중요하답니다.
그렇게 헝클어지고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가는 듯한 그 상태를 서둘러 정리하려거나 빠져나오려 하지 말고, 일정기간 동안 계속 그대로 있어보는 것이지요. 그 속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까 싶은 생각도 있고…”라는 등의 온갖 불안한 생각들과 회의가 일어날 터이지만, 그것조차 허용해 주면서, 그런 채로 계속 있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실험’의 여백이 아닐까요.
그것은 곧 ‘자기 믿음’과도 연결된답니다.
사람들이 가장 못견뎌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막연하고 모호하고 불분명하며 혼란스러운 것인데, ‘실험’이라는 것을 통하여 그러한 것들을 자신 안에서 허용하고 용납하고 깊이 만나며 맞닥뜨려 본다는 것은 비로소 그러한 것들을 자신 안에서 믿어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곧 ‘생명’으로 연결되어, 자신이 조금씩 살아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낮[빛]과 밤[어둠]이 있음으로써 '하루'가 온전해지듯, 자신 안을 있는 그대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그 삶도 온전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님이여.
모호할 수 있고 불안할 수 있는 그 자유를 누리십시오.
그것은 님의 삶에 또 다른 날개들을 달아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메라’ 얘기는 님 스스로 한 번 찾아보십시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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