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지금 '실험'을 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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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615회 작성일 09-01-03 21:42본문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암사동우루… 09-01-02 00:16
김기태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항상 이곳에서 많은 것을 얻어가기만 하는 청강생입니다. 새해부터 염치없이 질문을 드리게 됐습니다. 송구합니다.
얼마 전 '비원단상'의 부동산사무소 부부 이야기를 읽다가 그 사모님의 모습에서 문득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선이 내 자신이 아닌 밖을 향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차이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사모님은 남편을 향해 있지만 저는 밖의 모든 것(친구, 부모님, 사회 기타 등등)에 향해 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모님은 모범적인 일종의 상(像)을 가지고 남편을 보신 것이고 저는 어려서부터 경제적인 것부터 건강적인 것까지 겪은 고생 때문에 일종의 피해의식 혹은 분노로 밖을 바라보는 차이였습니다.(지금은 그 고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단지 성장통이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도 무한방기(無限放棄)를 제 자신에게 실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면서 내가 분노를 느끼는 대상들과 별반 다름이 없고, 같은 수준이란 걸 눈으로 목격하고 참.. 많이도 창피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목격하며 보름이 다 되어가던 어제 밤...
저는 친구들과의 송년회 겸 망년회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고, 장소는 걸어서 10분 정도 되는 곳이었으나 날이 너무 추워 택시를 타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문제는 약속장소 방향으로는 택시가 안 오고 반대 방향으로만 택시가 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반대 방향으로 가 택시를 잡았고, 약속장소를 부탁했더니 택시 기사분께서 상당히 짜증 섞인 말투로 그곳에 가는데 왜 반대 방향에서 탔냐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 순간 저는 보름간 해온 실험을 망쳐버렸습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허용하지 못하고 그만 택시기사분께 상당히 싸가지 없는 말투로 또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후 몇 걸음을 걷다가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내가 평소 속으로든 겉으로든 싸가지 없다고 욕하던 부류들과 방금 내가 한 행동이 눈곱만큼이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심란한 마음에 선생님께서 답변하신 글을 읽다가 '긍정'과 '행위'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선생님.. 내 안에 분노는 긍정하더라도 연세도 지긋한 택시기사분께 버릇없이 화를 낸 행위는 분명 잘못한 것이 맞지 않습니까? 명백히 제가 한 행위는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것이었지만 자꾸 마음이 괜찮다고 덮어두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 내 안의 들보를 덮어두려는 마음이 맞는 것인가요? 맞다면 과연 제가 실험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 저와는 맞지 않는 실험인가요? 정초부터 심란한 질문 드려 죄송합니다.
* *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눈이 자기 자신을 향해 있어서 스스로를 ‘실험’하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워가는 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님에게도 새해는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실험’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만나는 데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름간 해온 실험을 망쳐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은 오히려 더 없이 귀한 순간이요, 더 없이 귀한 경험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이 가장 ‘실험’의 참뜻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맞닥뜨리게 되는 순간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실험을 망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답니다. ‘망친다’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되지 않으며, 다만 끊임없는 배움과 각성이 있을 뿐이지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과 ‘행위’하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이긴 합니다만,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자신의 적나라한 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시인했다면 “자꾸 괜찮다고, 덮어두라고 하는” 님의 마음은 올바른 주문을 님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님 안의 들보를 덮어두려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평소 속으로든 겉으로든 싸가지 없다고 욕하던 부류들과 방금 내가 한 행동이 눈곱만큼이라도 다르지 않았음”을 시인하고 인정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님은 지금 ‘실험’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지요.
님은 조금씩 님 자신과 삶을 다르게 보아가고 있네요. 이를테면,
님의 시선이 언제나 밖을 향해 있었다는 것을 안 것……
지금껏 겪은 고생이 사실은 성장통(成長通)이었음을 안 것……
“내가 분노를 느끼는 대상들과 별반 다름이 없고, 같은 수준이란 걸 눈으로 목격하고 참.. 많이도 창피했습니다.”는 고백……
“택시에서 내린 후 몇 걸음을 걷다가 주저앉을 뻔했습니다.”는 말씀……
그리고
“내가 평소 속으로든 겉으로든 싸가지 없다고 욕하던 부류들과 방금 내가 한 행동이 눈곱만큼이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는 각성에 이르기까지…….
예,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자기 자신을 알아가고 만나가며 맞닥뜨려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순간마다
그것이 바로 '나'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늘 깨어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또한 '실험의 힘'이기도 하구요.
이제 비로소 진정한 배움의 길에 들어선 님께 진심어린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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