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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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10,056회 작성일 09-02-02 14:02본문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시므 09-02-01 22:34
이번에 대학을 들어가는 21살 여자입니다. 스카이를 목표로 공부했는데, 수능 당일 컨디션 조절 실패와 과도한 불안증으로 수능을 망치고 대학도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네... 여기까지는 마음 추스릴만큼 추스렸습니다. 제가 고민이고 불행한 이유는 가정환경 때문입니다. 결손가정도 아니고, 찢어지게 가난하지도 않습니다. 예전에는 꽤 부유했다가ㅡ IMF때 사업을 접게 되고, 그후 여러가지 자영업을 전전하다가 최근 다시 빚을 내어 중국집을 차렸습니다. 주방장과 배달원을 두면서도 아버지 어머니가 주방일, 잡무를 하며 소득을 냅니다. 경기가 침체된 터라 중국집 장사도 빚을 갚고 일어설 만큼 잘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망할 만큼 안 되지도 않고요. 제 밑에는 늦둥이 초등학생 둘이 있고요. 뭐 지극히 평범한 가정입니다. 불행하다면 불행하고 행복하다면 행복할 수 있는..
저희 아버지께는 약간은 어리숙하시고, 그야말로 베풀고 사는 사람으로 남한테 피해주거나 싫은 소리 안 하시는 분이신데, 나이가 드시면서 건망증이 심해지셔서 가게 일에 실수가 많으십니다. 어머니께서는 예전에 전업주부로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하시고, 클 때도 홀어머니에 형제 없이 자라서 사람 대하는 기술이 서투십니다. 제 불행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수능 후 부모님은 제가 가게일을 도와주기를 부탁하셨고, 저는 어차피 해봐야 몇 개월인데, 어차피 대학가면 못 도와드릴 거 도와드리자 하고 부모님을 도와 가게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모님께서 고용한 직원들을 잘 못 다뤄서 남는 일들은 저에게 시키기 시작했고, 처음 몇 번은 "해봤자 몇 번이야.."하면서 하던 일도 반복되자 점점 21살 좋은 나이에 그동안은 공부만 죽어라하다 대학가기전 몇 달 놀지도 새로운 인생을 펼칠 준비도 못한 채 중국집에서 설거지, 손님들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 제 자신이 불쌍하고..사장이면서도 직원들한테 말 한마디 못하는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워졌습니다. 몇 번 부모님과의 말다툼이 있었고, 부모님의 하소연에 가게를 나갔다가도 빚이며 밀린 외상값이 없다는 엄마의 넋두리 등에 질려 화가 나고, 이런 걱정 없이 자기 인생 준비에만 몰두하는 친구들이 부럽고, 이러다 내 인생도 중화요리에 묻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제가 계획은 디자인 계열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한번뿐인 제 청춘 살도 빼고 관리도 해서 근사하고 열정적이게 보내고 싶은데, 매일 아침 일어나면 부모님이 펼쳐놓은 암담한 현실과 마주하여 절망적이여 집니다. 도움을 주세요. 매일 밤 꿈꾸며 행복감에 젖어있다가도 내 인생이 없는 아침이 되면 불행해집니다.
* * *
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21살 꽃다운 나이의 청춘을 오직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채우고 싶은데, 그래서 살도 빼고 관리도 해서 근사하고 열정적이게 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있기는커녕 “21살 좋은 나이에 그동안은 공부만 죽어라 하다 대학가기 전 몇 달 동안 놀지도, 새로운 인생을 펼칠 준비도 못한 채 중국집에서 설거지, 손님들 뒤치다꺼리나 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 불쌍해 보이고, “이러다 내 인생도 중화요리에 묻혀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속상할까요....
그런데 님이 불행(?)한 것은 중.국.집.일.을.하.게.되.었.기.때.문.이.아.니.라, 님이 둘로 나누어졌기 때문입니다. 님의 몸과 삶은 ‘지금’에 있는데, 마음은 ‘지금’이 아닌 다른 곳 혹은 ‘미래’에 가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저 부정적으로만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님이 지금까지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지금 한번 해볼까요?
님의 마음을 님의 몸과 삶이 있는 ‘지금’으로 살포시 한번 가져와 보세요. 그리곤 오직 ‘지금’에만 있게 해보세요. 그러면 “이런 걱정 없이 자기 인생 준비에만 몰두하는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고, 또한 “나이가 드시면서 건망증이 심해져서 가게 일에 실수가 많으신” 아버지나 “예전에 전업주부로서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하시고, 클 때도 홀어머니에 형제 없이 자라서 사람 대하는 기술이 서투신”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자신을 불행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들을 위해서 잠시나마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자신의 삶을 다행하게 여기거나 어쩌면 감사까지 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와 같이, 님의 마음이 ‘지금’에 와있게 되면 모든 것은 참 다르게 보인답니다.
님이 ‘중국집일’을 말씀하시니, 문득 저도 꼭 그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제가 1980년 1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할 즈음에 맨처음 했던 일이 바로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대구 시내 중심가 가까이에 있던 중국집이라 매일매일이 휴일도 없이 눈코 뜰새없이 바빴고, 밤늦게까지 쉴새없이 일했으며, 한 달간을 그렇게 꼬박 일해도 고작 6만원의 봉급밖에 받지 못했지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스스로가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사실에 그저 가슴이 뿌듯했고, 그 돈을 어머니께 드릴 수 있다는 기쁨에 저 자신이 마냥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님과 똑같이 “몇 달간을 놀지도 못하고 새로운 인생을 펼칠 준비도 못한 채” 더구나 일개 종업원으로 일했지만, 첫 봉급을 들고 피곤함도 잊은 채 밤늦은 퇴근을 하자마자 어머니께 달려가던 저는 참 행복했답니다.
님이여.
마음을 조금만 비워보십시오.
그리곤 오직 ‘지금’에만 머물며, ‘지금’ 자신이 하게 된 일에 마음과 정성을 한번 담아보십시오. 그러면 불행하게만 여겨졌던 ‘지금’의 형편에서 오히려 님은 참으로 많은 것들을 새롭게 보며, 느끼며, 배우며, 성장하며, 자라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속에서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한다면 어느 순간에선들 제대로 된 것들을 건져 올릴 수 있겠습니까.
진정으로 님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도 무한히 주어질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진정으로 님 자신을 위한 시간들인 줄도 모릅니다. 그것을 '지금'이 아닌 다른 곳 혹은 '미래'로만 달려가는 님의 마음 때문에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지금'을 그저 불행하게만 여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님이여.
'지금'에 눈떠 보십시오.
우리의 삶의 진정으로 소중한 모든 것들은 오직 '지금' 속에만 있답니다.
“사장이면서도 직원들한테 말 한마디 못하는” 부모님을 위하여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이 삶의 기회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참된 지혜와 사랑이 님 안에서 깨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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