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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의 회심(回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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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6,661회 작성일 09-11-0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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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때의 위대한 성인(聖人) 중에 프란체스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아시시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젊어서는 향락을 추구하였고 기사(騎士)가 될 꿈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20세에 회심(回心)하여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청빈한 생활을 하기로 서약, 이후 청빈과 겸손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헌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회심에는 다음과 같은 우연하고도 극적인 일이 있었답니다.

늘 술과 오락과 허랑방탕한 생활에 빠져 생(生)을 허비하고 있던 스무 살의 어느 날, 갑자기 이웃 마을로 급한 볼 일 때문에 가게를 비우게 된 아버지의 강권으로 하루는 프란체스코가 가게를 보게 됩니다. 죽기보다도 싫었지만, 일찍 돌아오겠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서 하는 수 없이 가게를 지키게 된 프란체스코는 그러나 해가 빠져 어둠이 내리도록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그만 짜증과 원망과 설명할 수 없는 분노로 범벅이 된 채 어찌할 줄을 몰라 하며 가게 안을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부채질이라도 하듯 어둠이 깊어가면서 억수같은 비까지 내리는 겁니다.

“일찍 온다던 아버지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프란체스코는 거의 폭발 직전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비에 흠뻑 젖은 초췌한 몰골의 한 거지가 더러운 진흙탕 발을 가게 안으로 들여놓으며 프란체스코에게 한 푼 적선하기를 구합니다.

“주인님....며칠을 굶어 너무나 배가 고픕니다....제발 외면하지 마시고, 이 불쌍한 놈에게 동전 한 닢만 주십시오....”

하루 종일 투덜거리며 겨우겨우 참고 있던 프란체스코의 분노가 그 순간 폭발해 버립니다.

“나가, 이 ××야!”

너무나 크고 거칠어서 거의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마디 욕지거리를 내지름과 동시에 프란체스코는 어느새 그 거지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밖으로 끌고 나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진흙탕 길바닥 위에 내동댕이쳐버립니다. 그리곤 재수 없다는 듯 손을 털면서 마악 돌아서는데, 바로 그 순간, 마침 그 가게 앞을 지나던 한 아가씨와 우연하게 눈이 마주칩니다.


그 아가씨의 입장에서 보면, 내리는 비를 피해 얼른 집으로 가려고 마악 그 가게 앞을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두 남정네가 가게 앞에서 튀어나오더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진흙탕 길바닥 위에 사납게 내동댕이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으니, 놀란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저 그 장면을 지켜보게 되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그렇게 두 사람의 눈이 우연하게 마주치는 바로 그 순간, 프란체스코는 갑자기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 같은 것을 깊게 느끼게 되고, 그랬기에 몹시도 어색하고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는, 금고 문을 열고 한 움큼의 동전을 꺼내어, 아직도 공포스런 표정으로 나동그라져 있는 그 거지에게로 다가갑니다. 그리곤 그 거지의 손에 동전을 쥐어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미안하다....”


그때까지도 그 아가씨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기에, 돌아서는 프란체스코와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칩니다. 그러자 프란체스코는 마치 자신의 전부를 들켜버린 사람처럼 허둥대듯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아가씨는 이윽고 가게 앞을 지나서 가던 길을 계속 갑니다.


그 우연한 상황은 그렇게 종료되지만, 그때부터 프란체스코는 자리에 앉기만 하면 자신의 지난 날의 20년 동안의 허망한 삶들이 자꾸만 되돌이켜지고,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깨닫기 시작합니다.

‘아, 내가 잘못 살았구나....내가 너무나 인생을 헛되이 보내었구나....내가 너무나 허랑방탕하게 살았구나....’


그때부터 프란체스코의 삶은 완전히 바뀝니다.

아버지 가게의 물건을 제멋대로 꺼내어 그것으로 술을 마시며 환락으로 인생을 탕진하던 그의 삶은 완전히 끝이 나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과, 제 스스로는 구걸하지도 못하는 병든 거지들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누는 삶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나중에는 급기야 예수의 5상(五傷)이 몸에 선연히 나타나면서, 성인(聖人)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지요. 단지 단 한 번 우연하게 그 아가씨와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 그로 인해 짧은 한 순간 단지 자신을 한 번 들여다보게 된 것뿐인데, 그것이 프란체스코의 인생 전체를 뒤바꿔놓은 것이지요. (나중엔 그 아가씨도 프란체스코의 영향으로 성인(聖人)의 반열에 들게 됩니다. 그 아가씨의 이름은 ‘성녀(聖女) 글라라’ 입니다.)


님이여.

단 한 번의 진실한 깨달음은 이렇듯 자신의 모든 것을 뒤바꿔놓을 만큼 강렬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님이 어떤 잘못을 하고 실수를 했느냐 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님이 진.실.로. 그 잘못을 깨닫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아직 님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습니다.


“신성하게 지켜야 할 내 손이, 환자들과 가족들을 어루만져야 할 내 손이 너무도 더러운 짓을 하고 있었다...더럽혀졌다...”


그러나 님이 진.실.로. 그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하고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바로 그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님은 비약하여

님의 어린 시절과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통합(統合)되는

보다 분명하고 성숙된 인격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님은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셨고, 내면에 어떤 힘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누군가요, 선생님...’이라는 말로 끝맺은 이 글과,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일들로 인해

프란체스코처럼

보다 섬세하게 님 자신을 만나고,

그럼으로써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기회와 계기로 삼을 수 있기를,

그런 지혜가 님 안에서 열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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