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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좋고 싫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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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7,855회 작성일 11-02-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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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고 싫음이 있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자유 11-02-07 01:27


선생님, 안녕하세요. 연휴 끝자락에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한 가지 의문이 생겨 선생님께 여쭙습니다. 제가 그동안 읽었던 많은 책들 가운데 가장 좋았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선생님의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와 마이클 싱어라는 분이 쓴 '한 발짝 밖에 자유가 있다'라는 책일 것입니다. 두 책에서 공히 말씀하고 계신 것을 제가 감히 요약하자면, '모든 것은 이미 완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나에게 펼쳐지는 것을 구경하고 경험하며 계속 나아갈 뿐이다'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제가 많이 부족해 선생님이 말씀하시고자 한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그렇다면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것이 지나가도 그저 경험하면서 여유롭게 지나보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떠한 것이 지나가더라도 상관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떠한 것도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자 하는 마음도 들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삶이 어떠해야 한다는 기준이나 생각도 없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어떤 것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도 없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이른바 '시크릿'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왜 안 되지'라는 생각에 괴로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결국은 한 가지로 모아집니다. 이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내가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함'에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왜 어떤 것은 '싫은' 것입니까? 왜 좋고 싫음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좋고 싫음이 있다는 것이 저의 착각일까요? 좋고 싫음 자체도 원래 없는 것인데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일까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신체적 고통 같은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신체에서 느껴지는 통증... 이것은 그냥, 원래, 싫은 것 아닌가요? 깨달은 분들에게는 통증도 '싫은' 것이 아닐까요? 궁금합니다. 왜 좋고 싫음이 있습니까? 어떠한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저 닥쳐오는 모든 것을 편안히 받아들이며, 어떠한 것도 더 이상 바라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평온히 머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사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님이 스스로의 '질문'이나 '이해'에 대하여 좀 더 세미하게 살펴보지 못함으로 말미암은 오해가 있는 듯하여 우선 그 말씀부터 드리고자 합니다. 님은 감명 깊게 읽었던 두 권의 책의 내용을 요약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이미 완전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나에게 펼쳐지는 것을 구경하고 경험하며 계속 나아갈 뿐이다.”


참 잘 요약하셨습니다.

그런데 ‘구경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선 님이 오해하셨습니다.

말이 ‘구경’이지, 이게 참 녹록하지 않은 일이랍니다. 왜냐하면, ‘구경한다’는 말의 진의(眞義)는 무언가를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무심히 바라본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펼쳐지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내가 조절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고 모.든.것.을.있.는.그.대.로.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에, 그것은 어쩌면 매 순간 순간 자신의 전부를 바쳐서 자신을 만나야 하는, 참으로 고통스런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어릴 때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 내면의 깊디깊은 상처 때문에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긴장하고 경직되며 힘들어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문득문득 또다시 사람들로부터 내쳐짐을 당하지 않을까, 버림받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경험을 자신 안에서 자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구경한다’는 것은 그 두려움과 초라함과 한없는 결핍감을 외면하거나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맞닥뜨리고 받아들여 그 초라함 속에, 결핍감 속에, 그 순간 순간의 한없는 비참함 속에 그냥 그대로 있는다는 것이기에, 그것은 차라리 목숨을 내어놓는 것과도 같은 아픔을 동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경한다’는 말의 진의(眞義)를 이렇게 이해할 때

“그렇다면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것이 지나가도 그저 경험하면서 여.유.롭.게. 지나보낼 수 있을 것이고”라는 님의 말씀이나,

“어떠한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면 그저 닥쳐오는 모든 것을 편.안.히. 받아들이며, 어떠한 것도 더 이상 바라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평.온.히. 머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라는 님의 말씀은 같은 오해에서 비롯된 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경한다’ 즉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험한다’는 것은 차라리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과도 같은 고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님은 “결국은 한 가지로 모아집니다. 이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내가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함’에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왜 좋고 싫음이 있습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제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드리면, 우리에게 좋고 싫음이 있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랍니다. 좋고 싫음은 우리가 살아 있기에 경험하게 되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자연스런 생명 현상이라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에게 좋고 싫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리는 마치 죽은 목석(木石)과도 같은 존재일 뿐이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어떤 것은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은 취(取)하고 ‘싫은 것’은 끊임없이 버리려고만 하는 바로 그 마음에 있답니다. 좋은 것만을 취하여 ‘내것’으로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괴롭고, 싫은 것은 어떻게든 버리고 외면하고 거부하는 가운데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하고 싶은데 그게 또한 뜻대로 되지 않으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좋은 것’에 대한 집착과 추구를 조금 놓고 ‘싫은 것’에 대한 거부와 저항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매 순간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매일 매일 경험하는 일상의 ‘좋음’과 ‘싫음’ 속에서 뜻밖에도 영혼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답니다.


흔히들 말하지요,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고.

맞아요. 진리는, 자유는, 마음의 영원한 평화는 멀리 있지 않답니다.

우리가 매 순간 경험하는 바로 그 일상의 ‘좋음’과 ‘싫음’ 속에 있답니다.

다만 ‘좋음’만을 자신 속에 쌓아두고 ‘싫음’은 어떻게든 버리려고 하는 바로 그 마음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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