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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무상정등각이란 어떤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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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utrie@mail.com 댓글 1건 조회 8,086회 작성일 10-07-0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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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무상정등각 즉 아뇩다라샴먁삼보리를 말합니다.
이말은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등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무상정등각이란 어떤 깨달음을 말하는가요?
아래의 글은 제가 다른 곳에 올렸던 글을 참고 목적으로 이곳에 첨부하여 올려봅니다.
- 아 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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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정도 깨달음이 있다.
이 어느 정도의 깨달음이란 전혀 깨달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완전한 깨달음, 즉 무상정등각에는 이르지 못한 깨달음을 말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어슬픈 깨달음이다. 이 어슬픈 깨달음이 사람을 아주 곤경에서 헤어나지 못하게한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는 '도대체 너의 깨달음은 무엇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먼저 깨달음이 무엇인가부터 생각해보자.

깨달음은 영어로는 '인라이튼먼트'라고 한다.
나는 우리말 깨달음 보다는 영어의 인라이튼먼트가 더 깨달음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깨달음은 빛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인라이이튼먼트는 '불(light)이 들어오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깨달음이란 우리말도 불이 들어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라이튼먼트가 더욱 직접적인 표현이다.
그러면 무슨 불이 들어온다는 것인가?
사실은 불이 들어온다기 보다는 빛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 빛은 세가지 색의 빛으로 나타난다.
이 세가지 색의 빛을 인도고전에서는 쓰리 구나(우리말로는 三質 또는 三性으로 번역됨) 라고 한다.
이 빛은 세가지 색으로 나타나는데 첫째가 '흰빛', 그 다음에 '붉은 빛', '검은 빛'의 세 가지 색으로 나타난다.
인도의 고전인 베다, 바가바드 기타, 샹카철학에서 주로 말하는 것이며 흰빛을 삿트바 구나 붉은 빛을 라자스 구나 그리고 검은 빛을 타마스 구나라 말한다. 우리말로는 각각 순질, 동질, 암질이라고 한다.
그러면 쓰리 구나의 형태는 어떠한가?
그것은 이웃나라 일본의 국기에 나타나는 붉은 원을 라자스 구나로 보면 된다. 붉은 색이 흰색의 원형으로 나타나는 것이 삿트바 구나이고 검은색 원형이 타마스 구나 이다.
그런데 이 guna들은 guna들끼리 서로 배합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인도 샹카철학에서는이 guna들끼리 배합되어 나타나는 형태를 수학의 확률이론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불교 특히 원불교에서 말하는 법신일원상도 결국 삿트바 구나와 타마스 구나의 배합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불교가 아니라 힌두교의 용어이고 힌두교의 경전에 나타나는 것들이다.

왜 힌두교의 용어로 말하는가 하면 힌두교의 구나 이론이 세가지 색을 말하고 있으며 나의 경험(깨달음)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위 세 구나를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서로 다른 종교를 비교하여 언급하는 것은 다소 무리 일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불교의 법화경에서 말하는 3승이 힌두교의 쓰리 구나에 해당한다고 본다.
법화경의 3승이란 연각승, 보살승, 불승을 말하는데 각각 라자스구나, 삿트바구나, 타마스구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쓰리 구나는 또한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3과일에도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데 라자스 구나는 선과, 타마스구나는 악과삿트바 구나는 생명과에 부합시킬 수있다.

쓰리 구나(힌두교), 3승(불교), 3과(성경)에 부합시키는 것이 적정한 일일까?
그 해답은 쓰리 구나(힌두교), 3승(불교), 3과(성경) 이 모두가 원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3승의 승도 물론 원형의 수레바퀴를 뜻한다. 성경의 과일도 물론 원형이다.

마음이 표현하는 이 세가지 색의 빛은 말이 없이 나타내기만한다. 그 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색깔 때문에 힌두교 이론을 들먹였으나 깨달음의 궁극 목적은 역시 무상정등각이다.
그러면 무상정등각이란 무엇인가? 무상정등각은 하나의 형용사적 수식어 일 뿐이다.
원래 무상정등각은 석가모니의 깨달음인 연기법의 수식하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즉, '석가모니는 무상정등각인 연기법을 깨달았다'라고 표현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연기법이 위 쓰리구나로 해석될 수있을 것인가?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럼 연기법에서 말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쓰리구나의 라자스 구나라고 하면 저것은 타마스 구나가 될 것이다.
구나를 보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쓰리구나는 삿트바 구나를 기본으로하여 변화한다.
주역으로 말하면 삿트바 구나는 무극이고 라자스구나는 양(극)이며 타마스구나는 음(극)인 것이다.
쓰리구나중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삿트바구나인데 이것을 보고 우리 불교의 '이 뭣고?'라는 화두가 생긴 것이 아닌가한다.
그리고 타마스 구나와 삿트바구나의 결합형태인 우리 불교의 법신 일원상과 관련해서는 ' 입타야 불타야' 라는 화두가 있는데 이 화두의 답은 '중생'이다.
그러므로 베다등 인도의 고전에서 흰색의 위 빛을 삿트바 구나 즉 중생구나로 불렀는지 수긍이 가는 용어인것이다.

이상 나의 식견을 대강 서술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연기법에 해당한다고 할만한 깨달음(인라이튼먼트)은 아직 나에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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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깨달음은 '감각' 너머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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