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아직 '끝까지' 해보지 않았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5,157회 작성일 21-08-15 12:02본문
안녕하세요?
질문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은 글의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진정 자유롭게 산다는 게 무엇일까요? 정말 이제는 그만 고민하고 그만 좌절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지옥이니 온 세상이 지옥이네요...”
예, 그 마음의 힘겨움과 고통을 절절히 이해합니다.
이젠 정말 그 모든 괴로움을 끝내고 님 자신으로 돌아와 그냥 편안히 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그 절실한 마음두요.
그런데 진정으로 ‘그만’ 하고 싶으면 오히려 ‘끝까지’ 해봐야 합니다. 님은 아직 ‘끝까지’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한번 해보십시오.
‘길’은 언제나 지금, 그리고 님이 겪고 있는 그 현재의 경험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 그대로 일어나도록 ‘끝까지’ 허용하는 것이며, 동시에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저항을 ‘온전히’ 그치는 것입니다.
님은 “죽이고 싶고 해치고 싶은 상대가 있을 시엔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하면서, “그 사람과 그의 식구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이는 상상은 수도 없이 했었구요.”라고 말했지만, 아뇨, 그 상상을 더욱 더 허용하여, 그냥 ‘수도 없이’ 정도로만 할 것이 아니라 더 ‘무한히’ 하십시오. 또한 “정말 찾아가서 해코지하고 싶은 마음을 수십 수백 번도 더 냈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아뇨, 그 마음을 더 허용하여, ‘수십 수백 번’만 낼 것이 아니라 ‘수천 번 수만 번’을 내십시오. 지금 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상상과 마음을 ‘끝까지’ 해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사람과 그의 식구들을 아주 잔인하게 죽이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정말 찾아가서 해코지하고 싶은 마음을 수십 수백 번도 더 냈다.”라고 말하는 님의 마음 밑바탕에는 그런 잔인한 상상을 하고 해코지하고 싶은 마음을 내는 자기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저항’이 강하게 남아있음을 봅니다. 아뇨, 그런 상상과 마음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자연스러운 마음의 흐름을 가로막는 그 터무니없는 저항을 ‘온전히’ 걷어내어 버리십시오. 그 저항 때문에 님의 마음이 그토록 괴로운 것입니다.
또 '그 사람 머리통을 박살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등신 같다'는 감정과 함께 ‘스스로가 비참하고 정말 겁쟁이 같다’는 느낌이 올라올 때, 님은 그냥 “이 기분을 허용하고 있습니다.”라는 정도로 말씀하셨지만, 아뇨, 그 감정과 그 느낌을 정말 ‘끝까지’ 허용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허용 속에서 자신에 대한 초라함과 비참함, 괴로움이 치솟아 올라와 님 자신을 사로잡거든 그것 또한 ‘끝까지’ 허용해주고 ‘온전히’ 그 속에 있어 보십시오.
만약 진실로 이렇게―무위(無爲) 속에서, 다만 매순간 님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 느낌, 생각들을 온전히 허용해주고 그 저항을 멈추는 것―해볼 수 있다면 (다른 한편으로 님이 “그냥 아무 일 없이 일이 해결되고 다 지나갔음 좋겠다, 나와 그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벌이고 싶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님의 그 고민과 좌절은 어느새 끝나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동시에 그 모든 힘겨운 감정과 느낌과 생각들로부터 훌쩍 놓여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뜻밖에도 어떤 노력과 행위 후의 결과물로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완전한 허용’ 속에서 만나게 되는 진실이랍니다.
“선생님.. 진정 자유롭게 산다는 게 무엇일까요? 정말 이제는 그만 고민하고 그만 좌절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지옥이니 온 세상이 지옥이네요...”라는 애틋한 질문글을 올리신 님에게 참된 마음의 평화와 자유가 늘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