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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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4,246회 작성일 21-09-19 22:04본문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무시와 치욕을 받았을 때 분노가 차오르고 살인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 원인이 단지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 안에 치유 받지 못한 상처나 오래 억압되어 온 감정들―스스로는 자각하지 못하는―이 있을 때 상대방의 말 한마디나 눈빛 하나에도 무시와 치욕을 당했다고 느껴 크게 분노하거나 심지어 살인 충동마저 일으키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때, 그렇게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오직 상대방만을 탓하면서 그를 향해 발산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올라오는 그 감정들에 또렷이 깨어있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 내면의 감정들의 다양한 흐름과 움직임, 변화들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며 오롯이 지켜볼 수만 있다면, 놀랍게도 바로 그 순간 근본적인 마음의 ‘치유’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분노와 살인 충동 등을 느꼈을 때 그것을 그저 ‘밖’으로만 쏟아낸다면 똑같은 패턴의 무한 반복만을 삶 속에서 경험할 뿐이지만, 단지 주의를 ‘안’으로 돌리는 그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무시와 치욕이 오히려 내 영혼을 치유하는 ‘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문득 13세기 페르시아 신비주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가 쓴 ‘여인숙’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여인숙
이 존재, 인간은 여인숙이라
아침마다 새로운 손님이 당도한다.
한번은 기쁨, 한번은 좌절, 한번은 야비함
거기에, 약간의 찰나적 깨달음이
뜻밖의 손님처럼 찾아온다.
그들을 맞아 즐거이 모시라.
그것이 그대의 집안을
장롱 하나 남김없이 휩쓸어 가버리는
한 무리의 슬픔일지라도.
한분 한분을 정성껏 모시라.
그 손님은 뭔가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
그대 내면을 비워주려는 것인지도 모르는 것.
암울한 생각, 부끄러움, 울분, 이 모든 것을
웃음으로 맞아
안으로 모셔 들이라.
그 누가 찾아오시든 감사하라.
모두가 그대를 인도하러
저 너머에서 오신 분들이리니.
2.
예, ‘저항’도 자연스러운 마음의 현상입니다. 그러니, 자신 안에 저항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정’하고 '시인'하며, 그것 또한 있는 그대로 ‘허용’해 주면 됩니다.
3.
만약 그렇게 사람들이 우습게 보고 만만하게 대우한다면, 바로 그 순간에 님 안에서 올라오는 그 감정들에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만만한 대우가 오히려 뜻밖에도 님의 영혼을 치유하는 ‘훌륭한 약’이 된답니다.
4.
우리가 현재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내[眞我]가 나[假我]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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