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견해를 듣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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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없다있다 댓글 1건 조회 7,451회 작성일 12-02-20 21:06본문
마음과 몸이 고통스러운 사람입니다.
모 카페에서 올라온 글인데, 선생님은 이 글을 읽으시고,
괜찮은 치유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어요.
참고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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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공포증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공포증은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대인공포, 시선공포, 적면공포, 냄새공포, 무대공포, 광장공포, 폐쇄공포, 질병공포, 고소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 수없이 많습니다. 대인공포를 극복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입니다. 정신분열증에 대해서는 저는 언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공포증을 가진 분들은 대부분 이성적으로는 자신이 가지는 공포가 사실상 실재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대인공포증과 시선공포증을 봅시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그들의 시선에서 무엇이 나와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두려움이 밀려오고 우리는 그 두려움에 압도되고 맙니다.
대부분의 공포증은 허상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아도 두려움을 없애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지치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사실 두려움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두려움을 없애거나 수용하려고 해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휩싸인 나를 따뜻하게 이해하고 사랑하고 격려해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실생활에서 끊임 없이 나를 격려하며 두려움과 부딪쳐 나가도 두려움은 여전합니다. 따라서 행동치료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그러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허상이나 거의 일어날 확률이 없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대부분은 실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실재하는 두려움도 물론 있지만 그것은 이차적인 문제이며 아마도 종교의 문제를 논의해야 할 것 같아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다음은 공포증에 관해서 전문가나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이해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환우님들이 벌써 많이 아시리라고도 생각됩니다. 자신의 공포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환우님들이 모든 매체를 사용해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약물 치료입니다. 저의 경험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약에 의존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공포증이 너무 심하거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약이 정신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전적으로 약물에 의존하는 방법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제 마지막 방법이자 가장 중요한 치료방법입니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을 완전히 분리시켜야 합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감정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대체로 감정적으로 느끼고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은 매우 적습니다.
사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매우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감정적인 부분이 거의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감정과 매우 적은 부분에 불과한 이성을 확실하게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두려움에 압도되더라도 이성이 한 발 짝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훈련하십시오.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두려움과 괴로움을 주는, 수시로 흔들리는 우리의 감정과, 그 감정대로 놀아나는 우리의 육체와, 그 감정을 조절하려는 우리의 생각들을, 나 자신이 아닌, 극복해야할 대상 즉 2인칭이나 3인칭으로 정하십시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의 이성만을 나 자신, 즉 1인칭으로 인정하십시오. 나에게서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나를, 나의 전부로 인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증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게 됩니다. 이론상으로 어렵다고 느끼실지 모르겠으나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두려움이 있는 채로 치료가 될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강도는 점차 감소될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약 3개월 정도면 거의 완치되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 상태가 완치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영원히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생활하다 보면 점점 두려움과 함께 사는 데 익숙하게 됩니다. 두려움과 함께 희망과 자신감도 동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면 우리는 아픈 만큼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정상인들 보다 더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공포증이 오히려 우리에게 축복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느끼게 됩니다. 정상인들이 온전히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느끼고 알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더 풍부한 삶이고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하면 완전한 절망과 완전한 좌절은 없게 됩니다. 아주 작지만 희망이 동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정말 극히 작지만 그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우리를 일어서게 하고 힘을 내서 살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절망하고 또 일어서고 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절망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희망만 잃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더 보람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건투하시기 바랍니다.
도움이 될까 하여 덧붙입니다. 관조하는 나의 이성은, 모든 기분(기쁨, 두려움, 자신감, 좌절감, 시기, 질투, 불안감, 안도감, 희망, 절망, 자살 충동, 모멸감, 위협감, 파괴감, 우월감, 열등감, 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중, ...)과 모든 생각(분석, 관찰, 위로, 사랑, 판단, 인식, 격려, 수용, 관용, 용서, 연습, 계획, 노력, 목적, 습관, ...)과 모든 신체반응(얼굴이 붉어짐, 시선처리 곤란, 식은 땀, 심장의 격동, 어지러움, 손발 떨림, 신체 경련, 침이 마름, 두통, 눈이 붉어짐, 손발이 차가와짐, 호흡 곤란, 목이 뻣뻣함, ...)을, 그럴 수(도) 있다 라는 기분으로 바라봅니다. 물론 관조하는 이성도 생각의 하나이지만 저는 여기서 그것을 모든 다른 것과 구별하여 이성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관조하는 나의 이성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내가 1분 후에, 10분 후에, 1시간 쯤 후에 어떤 기분이며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신체반응을 할 것인지 대체로 예측합니다. 어떤 공포증이 유발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예측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상한 증상이나 상태가 발생해도 그 공포나 절망감에 완전히 압도 되지는 않습니다. 떨어져 지켜보는 나의 이성이 있으니까요. 이 관조하는 나의 이성이 두려움과 안도감의 균형을 잡아 주어 어느 한 쪽으로만 기우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두려워하고 좌절하는 나를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공포와 좌절감은 계속 되지만 또한 안도감과 희망도 같이 계속되어지는 것입니다. 희망이 계속 되는 한 우리는 어떠한 역경이 있어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조하는 나의 이성은 실재로 별로 노력을 하지는 않습니다. 미리 예측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항상 관조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피곤해서 얼마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 관조하는 나의 이성은 거의 저절로 모든 역할을 수행합니다. 일부러 노력하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초기에만 좀 하면 그 다음 부터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관조하기 때문에 우리의 에너지를 뺏어 간다든지 우리의 판단에 혼란을 주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냥 즐기며 일반인들 보다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일반인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는 제 직장이나 저의 이웃들에게 비록 의견은 서로 맞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며 오히려 일반인들 보다 지지와 존중을 많이 받는 편입니다. 저도 사는 보람을 많이 느끼며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소신 있게 행동합니다. 인생관이 일반인들과는 분명히 좀 다릅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더 옳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 번 생각을 해보아도 역시 제가 가는 길이 옳다고 결론이 나며,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의견이 옳다는 것이 실생활 속에서 계속 드러납니다.
댓글목록
김기태님의 댓글
김기태 작성일
안녕하세요?
저의 답변이 많이 늦었습니다.
올려주신 긴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치유'의 방법과 길은 사람마다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맞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도 항상 그 길이 맞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아프기에 얼른 낫고 싶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그렇다고 또 내게 맞는 방법만을 찾아 늘상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제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치유'는 상처 속에 있습니다.
상처 그 안에 영원한 치유의 길이 함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껴안을 때, 아프지만 나을 수 있는 길도 함께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언제나 상처 바깥에서 치유의 길을 찾으니, 효과는 있으나 '진정한 치유'는 없는 반복을 거듭하는 것이지요.
님 안에, 상처 안에 열쇠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찾지 마십시오.
아, 님에게 평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