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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나’를 만날 수 있을 때 ‘남’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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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6,224회 작성일 10-03-1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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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은 글의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꿈은 사람들과 다시 잘 지내는 것이예요. 기름이 아니라 물이 되어서 사람들과 함께 잘 섞이고 싶어요.”라고.... 그 말씀을 들으니 제 가슴이 참 아리고 아픕니다. 왜냐하면, 심한 대인공포를 겪어왔던 저로서는 누구보다도 그 마음의 힘겨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하기 전에,

기름이 아니라 물이 되어서 사람들과 함께 잘 섞이려고 하기 전에,

먼저 님 자신과 잘 지내고, 님 자신과 먼저 기름이 아니라 물이 되어 잘 섞이려고 해야 한다구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님 자신과 잘 지내고 또 님 자신과 함께 잘 섞일 수 있을까요?

그 길은 오직 하나, 지금의 님 자신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님의 글 어디에도 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흔적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인사를 잘 하지 못하고, 표정이 우울하고, 무심한 자신을 한탄하고 저주하기만 할 뿐.... “언제나 늘 저는 이렇습니다. 인간관계의 첫 단추를 이런 식으로 꿰매니 관계고 뭐고 성립이 되질 않습니다. 제 마음의 한이자, 궁극의 문제....”라고 님이 스스로 말씀하고 있듯이요.


그런데 그렇게, 님이 님 자신과 (물과 기름처럼) 조금도 섞이지 않는데, 어떻게 남과 함께 섞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불.가.능.한.입.니.다.

내가 ‘나’를 만날 수 있을 때 비로소 ‘남’도 진정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제 자신이 맘껏 시선을 회피하게 두었습니다.(이렇게 맞습니까?) 그런데 불안으로 인한 행동.... 손을 코에 댄다든지... 코를 훌쩍거린다든지.... 등등의 행동은 억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억제되지 않고 불안한 행동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그런 행동도 억제하지 말고 수십 번 수백 번 허용하면 됩니까?)”

수십 번 수백 번이 아니라, 단 한 번 진정으로 허용하면 됩니다.

그런데 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끊임없이 그런 자신을 거부하고 저항하고 있음을 봅니다.


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저는 공부하던 책을 보고 있지만....머릿속엔 '말을 걸어야 하나', '무슨 말을 걸어야 하지?', '언제 말을 거는 게 좋지?', '침묵하고 한참 지났는데 말 걸면 이상하지 않나?' 별의별 생각이 가득합니다.”

“....가장 기초적인 질문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점심은 드셨습니까?" "병원 가셨다더니 몸은 괜찮으십니까?" 이런 질문을 해야겠지 머릿속에 생각은 나는데, 도통 입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합니다. 언제 말을 해야 하는지... 지금 말해도 타이밍이 괜찮은지.... 등등을 따지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인간관계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갓난아기에게마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정말이지 너무나 저를 닮았습니다. 저도 경명여고에 들어와서 지난 2년 동안 매일 매 순간을 님과 똑같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같이 있어도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등과 같은 가장 기초적이고도 일상적인 질문조차 하지 못했고, 상대방이 저에게 “식사하셨습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오면 단 한 번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언제나 말꼬리를 흐렸으며, 심지어 여러 선생님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갈 때는 제가 볼일이 있어 먼저 나와야 하는 일이 있어도 (그래서 밥을 빨리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이 가장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순간일까...’하고 항상 눈치만 보다가 일어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밖에 다른 수없이 많은 일에 있어서도 저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님과 제가 너무나 많이 닮아 있지만, 딱 한 가지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저는 그런 저 자신을 매 순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경험하면서 그게 바로 ‘나’임을 인정하고 시인했지만, 그리고 그로 인한 고통들을 남김없이 다 받고 치러냈지만, 님은 그런 자신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거부하고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의 대처법은 언제나 회피였습니다....”라고 님이 스스로 말하고 있듯이요.


아닙니다, 님이여.

님 자신을 거부하고 외면하지 마십시오.

지금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껴안고 뒹굴며 그와 함께 아파하십시오.

님을 외면하는 고통보다 님을 껴안는 고통을 받으십시오.

전자(前者)의 고통은 10년이 아니라 100년이 가도 끝이 없지만, 후자(後者)의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그 고통에 물들지 않는 평화도 함께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 님이여.

사람들과 언제나 잘 지내는 ‘남’이 되려하지 말고, 지금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님 자신이 되십시오.

님이 변화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지금'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님이 님 자신을 그렇듯 물과 기름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매 순간의 ‘지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렇게 님이 님 자신을 조금씩 만나갈 때

그때 비로소 님의 그 오랜 갈증도 조금씩 끝나갈 것입니다.

비로소 님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지요.


아, 님에게 용기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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