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될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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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870회 작성일 06-06-25 13:50본문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에 제가 서울에서 도덕경(道德經)인가 육조단경(六祖壇經)을 강의할 때 연세가 60이 넘으신 어르신 한 분이 오셨더랬습니다. 이 분은 그야말로 평생을 두고 '영원한 자유'를 찾아 온 세계를 돌아다니셨는데, 아무리 아무리 찾아도 못찾으셨던 것이지요. 그러는 동안에 세월이 많이 흘렀고, 몸도 마음도 많이 상하고 늙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몇 번 강의를 듣던 어느 날, 강의 중간의 쉬는 시간에 문득 탄식하듯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영원한 자유를 찾아 50년이 넘는 세월을 돌아다녔건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마치 아이를 등에 업고 아이를 찾아다닌 격이로구나……! 자유는 내 등에 있고, 나는 그것과 단 한 순간도 분리된 적이 없건만, 어찌하여 나는 내가 업고 있는 자유는 보지 못한 채 그토록이나 멀리 돌아다녀야만 했을꼬……!"
그러면서 그 분은 이런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나를 구속한 적이 없고,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하라 하지 말라 한 적이 없건만, 그리고 나 또한 언제건 마음먹은 대로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할 수 있었고 또 사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건만, 그리하여 나는 지금껏 자유했건만, 50년이 넘도록 나를 짓누르며 가위눌리듯 늘상 쫓겨다니게 했던 그 구속감은 또 어인 일인가……?"
님은 제게 "어디선가 읽은 내용에 상황(경계와 같은 뜻인지?)은 현재의 나의 의지(생각)와 별개의 현상이라 본 기억이 있고, 모든 상황들은 자연적(저절로)이라 알고 있는데, 그러면 저의 자율의지는 어디까지인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삶이 곧 '자유'요, 삶의 모든 순간이 온통 자율의지입니다.
보세요, 일어나는 온갖 상황과 형편과 경계(境界) 속에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고,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극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자유도 '나'에게 있습니다.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고, 거부하거나 저항함으로써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거기에 구속당할 수 있는 자유도 또한 '나'에게 있습니다.
보세요, 일어나는 온갖 상황과 형편과 경계(境界) 속에서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고, 거부하거나 저항하거나 극복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또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는 자유도 '나'에게 있습니다. 받아들임으로써 편안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있고, 거부하거나 저항함으로써 힘들어하거나 괴로워하거나 거기에 구속당할 수 있는 자유도 또한 '나'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이 단 한 순간도 '자유'를 떠나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삶은 온통 자율의지 안에서의 일이며, 그렇기에 삶의 모든 순간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구속이 구속이 아니요 결핍이 결핍이 아니건만, 사람들은 구속이 없는 곳에서 자유를 찾고 결핍이 없는 곳에서 평화를 구하니, 삶의 모든 순간이 오히려 힘들어져버리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자유'는 구속이나 결핍에 물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속이나 결핍도 우리의 '자유' 안에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구속이 구속이 아니요 결핍이 결핍이 아니건만, 사람들은 구속이 없는 곳에서 자유를 찾고 결핍이 없는 곳에서 평화를 구하니, 삶의 모든 순간이 오히려 힘들어져버리는 것이지요. 아닙니다, '자유'는 구속이나 결핍에 물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속이나 결핍도 우리의 '자유' 안에서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껏 구속당하고, 마음껏 힘들어 보십시오. 다만, 구속이 없는 곳에서 자유를 구하고 결핍이 없는 곳에서 평화를 찾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면 구속 그 안에 자유가 있고, 결핍 거기에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는 풍요가 가득히 들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구속될 수 있는 자유, 그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요 힘입니다.
"끝으로, 현재 사람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는 주어지는 현실을 열심히 사는 것입니다. '바깥'의 일 뿐만 아니라 '내면'의 일두요. 즉, 구속이 오면 구속을, 결핍이 오면 결핍을, 외로움이 오면 외로움을, 경직이 오면 경직을, 초라함이 오면 초라함을, 무기력이 오면 무기력을 100% 살아내는 것, 그리하여 매 순간순간의 현재(現在)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깨침'입니다.
* * *
여쭙니다.
공허 06-06-22 21:09
먼저 감사드립니다.
질문의 말씀은, 쉬지 못하고 항시 헤매는 마음과 경계에 대하여 여쭙니다. 어디선가 읽은 내용에 상황(경계와 같은 뜻인지?)은 현재의 나의 의지(생각)와 별개의 현상이라 본 기억이 있고, 모든 상황들은 자연적(저절로)이라 알고 있는데, 그러면 저의 자율 의지는 어디까지인지요?
그리고 스스로와 가정과 사회적으로 느끼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 아니 최소한으로라도 느끼고 압력으로 다가오는 요구에 자신 스스로가 대처해야 할 정도는 (어쩔 수 없을 때) 어디까지입니까? 끝으로, 현재 사람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깨침에 대한 욕구는 바람직한 욕구인지요.
꿈을 깨고 싶은 심정에 질문 올립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다시 뵙겠습니다.
공허 06-06-22 21:09
먼저 감사드립니다.
질문의 말씀은, 쉬지 못하고 항시 헤매는 마음과 경계에 대하여 여쭙니다. 어디선가 읽은 내용에 상황(경계와 같은 뜻인지?)은 현재의 나의 의지(생각)와 별개의 현상이라 본 기억이 있고, 모든 상황들은 자연적(저절로)이라 알고 있는데, 그러면 저의 자율 의지는 어디까지인지요?
그리고 스스로와 가정과 사회적으로 느끼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 아니 최소한으로라도 느끼고 압력으로 다가오는 요구에 자신 스스로가 대처해야 할 정도는 (어쩔 수 없을 때) 어디까지입니까? 끝으로, 현재 사람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깨침에 대한 욕구는 바람직한 욕구인지요.
꿈을 깨고 싶은 심정에 질문 올립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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