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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인정'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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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366회 작성일 06-07-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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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제 막 '학부형'이 된 많은 다른 부모들도 님과 비슷한 마음앓이들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그런 자신을 너무 정죄하고 닦달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쫌만 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해보십시다. 님이 지금 겪고 있는 일은 '학부형'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요.
다만 이제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는 모든 일에 서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으며, 이런저런 경우에 있어서 잘 하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는 사실을 님이 먼저 좀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말하자면,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것인데, 그러면 그때 비로소 아이가 아이로서 보이고 '님의 기대'로써 아이를 보지 않게 되어, 조금씩 조금씩 아이와 함께 호흡하고 함께 흐를 수 있는 여백과 여유 같은 것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백과 여유를 통하여 엄마와 아이의 마음이 함께 살아나, 서로간에 설명할 수 없는 신뢰 같은 것도 싹트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요. 즉, 공부 이전에 '아이와의 마음의 교통(交通)'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님은 또한 "전 왜 이렇게밖에 안 되는지... 객관적인 제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급한 성질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라고 하시며, "순간적인 화를 좀 누그러뜨리고 싶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그러뜨리려' 하기 이전에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시 말해 님은 순간적으로 화를 자제하지 못하고 잘 내는 사람이며, 그로 인해 아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하고 시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님이 진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설명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하여 님의 마음이 '변화'하여,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거나 사라지거나 더 이상 님과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순간적인 화를 자제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끊임없이 그것을 누그러뜨리려고만 한다면, 화는 더욱 님 안에서 박동(博動)하여 시시로 때때로 님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아이에게도 상처로 다가갈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님 안에서의 자그마한 실수나 보잘것없음이나 초라함을 스스로 인정하거나 시인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부끄러워하는 바로 그 마음이 아이의 자그마한 실수나 부족함이나 허물에 대해서도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너무 잘 하라고만 하기 이전에, 그래서 잘 하는 아이만 사랑하려 하기 이전에, 이런저런 모양으로 여전히 잘 하고 있지 못한 님 자신을 먼저 용납하고 사랑해 주십시오. 님 자신의 부족과 허물을 진실로 시인하고 인정하며 그것을 따뜻이 품고 사랑해줄 수 있을 때, 아이의 부족과 허물 또한 따뜻이 바라봐 주면서 아이를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답니다.
여기, 저의 홈페이지의 <지난 게시판> 2005년 4월20일에 올려진 문답글을 다시 한 번 올려봅니다. 아이로 인한 엄마의 아픔과 힘겨움과 사랑이 깊이 배어있는 글인데, 또 다른 모양으로 님의 마음에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입니다. 고맙습니다.
아이와의 깊고도 따뜻한 신뢰와 사랑이 샘솟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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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자주 이 곳에 들러 좋은 글 많이 보고 있습니다. 매일 저 자신에게 수없이 되풀이하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선생님의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저에게는 무척이나 산만하고 또래에 비해 정신연령이 낮아 보이는, 그렇다고 뚜렷한 학습장애가 있다든지 그렇지도 않은데, 매일 저와 싸우는 초등학교 남자아이가 하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좀 힘든 아이였는데, 시간이 흐르고 자라면 좀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려 보아도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이는 수시로 문제를 일으키고 아이 자신도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다른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또 엄마인 저로부터도 항상 잔소리와 꾸중의 연속입니다.
길고 괴로운 하루가 끝나고 잠들어 있는 아이의 천사 같은 모습을 보면 이 아이를 전적으로 껴안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무척 화가 나고 아이에게 죄책감도 느껴집니다. 제가 이 아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는, 자격이 없는 부모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똑같은 하루가 반복됩니다.
온갖 사건 속으로 아이는 나를 끌고 가는 것 같습니다.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항상 혼자서 걸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 *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님의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봤던 영화 중에 '리틀붓다(Little Buddha)'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저는 특히 그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랜 고행을 마친 석가모니가 마지막으로 보리수나무 아래에 정좌하고 앉는 장면이었는데, 영화는 그때 그의 내면에서 일어났음직한 온갖 생각들과 유혹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때로는 미친 듯 불어오는 바람이 그의 주변을 온통 먹빛으로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집채만한 파도가 단숨에 그를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 또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길이 그의 앞에 펼쳐지는가 싶더니, 문득 수천 수만의 군사들이 대열을 지어 석가모니 앞으로 다가와서는 그를 향해 수천 수만 개의 불화살을 일시에 쏘아댑니다. 아, 저는 바로 이 장면이 그토록 인상적이었는데, 그렇게 날아간 불화살은 석가모니의 몸에 꽂히기 전에 수천 수만 송이의 꽃잎으로 화해버립니다.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는 석가모니 머리 위로, 날아온 화살들이 변해 흩날리는 수천 수만 송이의 꽃잎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석가모니에게는 꽂힐 과녁이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의 내면에는 도무지 '꽂힐 곳'이 없었기에, 그 어떤 화살도 그에게는 화살이 아닌 꽃잎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과녁'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우리 안에는 삶의 어떤 순간에도 꽂힐 수밖에 없는 커다란 '과녁'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녁'은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기 때문에 자신 안에 그토록 큰 '과녁'이 있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채, 삶을 통하여 언제나 '화살' 탓만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만약 우리 안에 있는 이 '과녁'의 존재를 깨달아 그것을 치워버릴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안에 있는 그 '과녁'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삶의 순간순간에 날아와 꽂혀서는 언제나 우리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던 그 많은 화살도 다만 화살이 아니라 그때마다 우리를 새롭게 눈뜨게 하는 아름답고 눈부신 꽃잎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으냐 하면, 우리 생(生)의 거의 대부분의 '문제'와 '힘겨움'은 바깥에서 날아온 '화살'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이 '과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녁'이 없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릴 화살들도 '과녁'이 있었기에 꽂힌 것인데도,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모든 힘겨움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인> 이 과녁은 보지 못한 채 끊임없이 '화살'만을 문제삼는다는 것입니다.
님은 매일이다시피 엄마와 싸움(?)을 하는 초등학교 아들 얘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에게는 무척이나 산만하고 또래에 비해 정신연령이 낮아 보이는...."
"시간이 흐르고 자라면 좀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려 보아도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이는 수시로 문제를 일으키고...."
"아이 자신도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다른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또 엄마인 저로부터도 항상 잔소리와 꾸중의 연속입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보기엔 아이보다도 엄마가 더 상처받은 영혼인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믿어주거나 존중해 본 적이 없기에, 그 기쁨을 누려본 적이 없기에,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언제나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어떤 '기준'과 '잣대'로 불안하게 내몰리며 살았기에, 아이마저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지 못하고 언제나 어느 순간에나 어떤 '기준'과 '잣대'로써 아이를 재단하며 무한히 내몰기만 하는....그럼으로써 아이의 '자기다움'을 죽이고 또한 자신도 거듭 죽는....아, 엄마의 상처가 아이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되는....!
님은 아이가 '산만하다' 하시지만, 아뇨, 아이는 결코 '산만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단지 아이일 뿐이요, 그저 자기답게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 '조용하고 정숙하며 항상 단정한 아이여야 한다'는 엄마의 기준과 잣대가 아이를 그렇게 보게 하는 것은 아닌지요.
또 님은 "아이가 시간이 흐르고 자라면 좀 좋아지겠지 하고 기다려 보아도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라고 말씀하시지만, '좋아진다'는 것은 무엇이 그렇다는 것입니까? 그 또한 엄마와 우리 어른들의 기준과 잣대가 아닌가요? 그것이 정녕 <아이에게도> 좋은가요? 우리는 너무 쉽게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말하고 행위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요.
"또래에 비해 정신연령이 낮아 보이는...."
아, 제발 이런 말만은....!
아이가 정신연령이 낮아 보이는 것 보다 더 깝깝하고 불안해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다른 아이와 비교하고 있는 엄마의 마음입니다.
"아이 자신도 사회성이 부족한 탓에 다른 아이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사회성'이란 인간관계를 나누는 힘이요 능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사회성이 길러지는 최초의 토양은 바로 가정이요, 부모 형제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아이를 믿어주지 못하고 언제나 어떤 '기준'과 '잣대'로써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저지하면서 '끌고 가고자만' 하는데, 어찌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회성의 힘'을 키워갈 수 있겠습니까. 그와 같이 아이의 상처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받기 이전에 이미 엄마에게서 먼저 받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언제나 '보여지는 모습'에만 집착하며 살아온 엄마이기에 또 그렇게 아이에게도 쫓기듯 강요하는 것이지요.
엄마가 먼저 '자신 안의 상처'를 깊이 이해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울 때, 아이는 절로절로 자라며 그 누구로부터도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답니다.
"아이는 수시로 문제를 일으키고...."
아뇨, 제게는 그것이 '문제'로 보이지를 않고, 엄마의 억압에 눌리지 않는 아이만의 어떤 '힘'으로 느껴집니다. 아이편에 서주고, 아이를 믿어주며, 그렇게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조금씩 자기 자신 위에 우뚝 서서 스스로를 살리고, 또한 엄마와 함께도 넉넉히 자라나갈 어떤 에너지 말입니다....
아, 님이여.
'아이는 다 맞고 엄마는 다 틀렸다'는 것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결코 '소유물'이 아니며,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할 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는 <자기 자신으로서> <자기답게> 커나갈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끌고 가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동행하고 아이와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아이가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자기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이며, 그런 과정 속에서 부모 또한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게 되는, 아! '가정'이란 그와 같이 함께 배우고 함께 자라는, 삶이 우리에게 준 축복이요 축제의 장(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님이여.
조금만 더 천천히,
너무 아이의 앞에서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때로는 아이 뒤에 서보기도 하고 때로는 나란히 걷기도 하면서,
'요구'하거나 '강요'하기 전에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찬찬히 '관찰'해 보기도 하면서,
아이를 향한 두 눈을 거두어 때로는 자기 자신도 보면서,
그렇게 함께 갈 수는 없는가요?
어쩌면 아이는 엄마 안에 있는 상처 투성이의 '과녁'을 또렷이 보게 하는 맑은 거울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엄마'이기 이전에 한 존재로서,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나'에 대하여 다시 눈뜨게 하는 참 고마운 인연일는지도 모릅니다.
님이여.
사랑하는 아이와의 힘겨운 싸움(?) 속에서 이 모든 '새로운 이해'들이 님에게 찾아와서,
새살 돋듯 님이 살아나고
아이 또한 봄햇살 마냥 활짝 피어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 *
순간적인 화를 좀 누그러뜨리고 싶습니다.
라벤다 06-07-04 09:08

안녕하세요?
초등 1학년인 아이를 가르치다 가끔씩 화가 자제가 안됩니다. 어제도 결국은 지우개가 날아가고.. 이러다 아이랑 사이만 나빠지고 학습의욕도 잃게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렇다고 너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둬서 되는 나이도 아니고...
전 왜 이렇게밖에 안 되는지... 객관적인 제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급한 성질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순간적이라서 자제가 힘듭니다.
진지한 질문이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도움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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