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님께 여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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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702회 작성일 06-07-07 10:05본문
얼마 전 님이 이 <질의응답>방에 '아, 곡즉전!'이란 제목으로 백지의 글을 남기셨을 때, 그 순간 님은 제 가슴 속에 오롯이 새겨졌더랬습니다.
오늘 님은 제게 말씀하십니다.
"여전히 전체를 잃어버린 개체의 마음이, 부처를 잃어버린 중생의 마음이, 보리를 잃어버린 번뇌의 마음이 더 많이 나를 더 지배하고 살아갑니다...."라구요.
"여전히 전체를 잃어버린 개체의 마음이, 부처를 잃어버린 중생의 마음이, 보리를 잃어버린 번뇌의 마음이 더 많이 나를 더 지배하고 살아갑니다...."라구요.
그런 님께 저는 정말 간절하게 여쭙겠습니다.
그냥 개체의 마음이면 안 되겠습니까?
그냥 중생이면 안 되겠습니까?
그냥 번뇌하면 안 되겠습니까?
왜 꼭 님은
'전체'여야 하며, '부처'가 되어야 하며, '보리'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버려둔 채 그런 것들만을 사랑하려 하십니까?
왜 꼭 그렇게 완전한 것들만을 사랑하려 하십니까?
정녕 부족하고 못나고 초라하고 결핍된 것들은 사랑할 만한 것이 못되나요?
그러한 것들은 언제나 정죄(定罪)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요?
그런데 정녕 사랑과 따뜻함은 그러한 것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전체'여야 하며, '부처'가 되어야 하며, '보리'의 마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버려둔 채 그런 것들만을 사랑하려 하십니까?
왜 꼭 그렇게 완전한 것들만을 사랑하려 하십니까?
정녕 부족하고 못나고 초라하고 결핍된 것들은 사랑할 만한 것이 못되나요?
그러한 것들은 언제나 정죄(定罪)의 대상이 되어야 하나요?
그런데 정녕 사랑과 따뜻함은 그러한 것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닌가요?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껴안아 보십시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보십시오.
단 한 순간만이라도 가던 길을 돌이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주십시오.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보십시오.
단 한 순간만이라도 가던 길을 돌이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주십시오.
거기, 님이 있습니다.
님 자신이요.
님 자신이요.
* * *
그것이 무엇이길래......
영선 06-07-06 14:23
언제나 조용히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마음의 살림살이에 풍성함을 더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교회를 다닌 지 약 7∼8년, 그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를 갖게 된지가 한 5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책을 읽어보았고 어슬프게 명상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어떤 때는 여름 휴가철에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영성수련원엘 들어가 1주일씩이나 앉아 있다 오기도 해보았습니다.
요즘이 흔히 말하는 추수기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요? 인터넷에는 수많은 도인과 깨달은 자들이 저마다 경연을 펼칩니다. 이렇게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저렇게 해야 깨달을 수 있다.... 죽기 살기로 덤벼서 깨달음을 얻고 보니 지금 여기 이 순간 모두가 깨달아 있다.
별거 아니다. 그러니 깨달으려고 하지 마라. 깨달으려는 그 마음을 버려라. 우리는 개체이면서 전체다. 번뇌가 보리요, 중생이 부처다. 진아가 곧 하느님이고 진리고 진짜 나다. 그러니 그 앎이 곧 진짜 내가 되게 마음의 분별심만 내려놓아라......................
처음에는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잘 알지도 가슴에 와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이제는 선생님의 글들이나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정도는 알아듣고 이해도 되고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보편적인 인생들의 바다에서 열외가 되다시피 하며 치열하게 길을 찾아 헤매다 어떤 분으로부터 줄탁동시의 기회를 얻어 한 순간 모오든 의문은 풀려버렸고, 타는 듯한 갈증은 내 안에서 생수가 터지듯이 시원하게 해갈되어 버렸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하산하였고, 지금은 세상 속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생수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여기의 신 외에 그 어떤 다른 신도 구하지 말라. 다만 마음의 분별심만 내려놓아라. 그리하면 당신이 바로 지금 여기의 신이 되어 진정 도를 얻으리라.... 길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愛타게 福音을 전합니다. 선생님의 그 愛타는 순수마음이 가슴 절절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든 복음이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는 되고 또 그렇게 해보니 생활에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 지금 여기의 신이 되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전체를 잃어버린 개체의 마음이, 부처를 잃어버린 중생의 마음이, 보리를 잃어버린 번뇌의 마음이 더 많이 나를 더 지배하고 살아갑니다.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어떤 수련단체에서는 마음의 에고를 닦고 죽이고 버리는 탁월한 수행방법으로 깨달은 분이 직접 지도를 하여 불과 몇 일만에 온 몸과 마음으로 견성의 단계를 스스로 체험하도록 지도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행지도를 받은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실제로 내면에서 생수가 터져나오는 것 같은 견성체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선생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깨달은 분들의 글을 보면 자신이 직접 깨닫고 보니 닦고 죽이고 할 마음이 없는데 무엇을 닦고 죽인다는 것이냐, 단지 그것을 분별하는 그 분별심만 내려놓으면 될 것을 하면서 도닦는 자들을 안타까워하십니다.(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많은 사람들은 사실은 따지고 보면 자신들도 그렇게 치열하게 도를 구한 결과 지금과 같은 경지를 살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음) 그러나 아직 그 경지를 경험하지 못한 나 같은 중생들은 그 말씀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지만, 그것이 되지 못하니 이렇게 아직도 갈증을 느끼고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아닌 '그것이 되고자'하는 방법과 의지와 노력을 내려놓고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복음으로 이따금 목이나 축이며 여전히 목마른 자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요즘은 아무리 낙후된 농촌이라도 하늘에서 비가 와야만 가뭄을 면할 수 있는 천수답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스스로 수자원을 확보하여 언제든지 마르지 않는 비옥한 논을 만들어 풍성하게 농사를 짓는 시대입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의 글을 많이 읽어 보았지만, 김선생님의 복음이 언제나 현실적인
삶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것 같아 늘 감사하게 읽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의 질문이 너무나 절실하게 도대체 그게 무엇이냐고 선생님께 묻고 있길래 저 역시 마찬가지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영선 06-07-06 14:23
언제나 조용히 선생님의 글을 읽고 마음의 살림살이에 풍성함을 더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고맙습니다.^^
교회를 다닌 지 약 7∼8년, 그리고 교회를 다니지 않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화두를 갖게 된지가 한 5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책을 읽어보았고 어슬프게 명상도 많이 해보았습니다. 어떤 때는 여름 휴가철에 가족들을 내팽개치고 혼자 영성수련원엘 들어가 1주일씩이나 앉아 있다 오기도 해보았습니다.
요즘이 흔히 말하는 추수기가 되기라도 한 것일까요? 인터넷에는 수많은 도인과 깨달은 자들이 저마다 경연을 펼칩니다. 이렇게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저렇게 해야 깨달을 수 있다.... 죽기 살기로 덤벼서 깨달음을 얻고 보니 지금 여기 이 순간 모두가 깨달아 있다.
별거 아니다. 그러니 깨달으려고 하지 마라. 깨달으려는 그 마음을 버려라. 우리는 개체이면서 전체다. 번뇌가 보리요, 중생이 부처다. 진아가 곧 하느님이고 진리고 진짜 나다. 그러니 그 앎이 곧 진짜 내가 되게 마음의 분별심만 내려놓아라......................
처음에는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잘 알지도 가슴에 와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이제는 선생님의 글들이나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정도는 알아듣고 이해도 되고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무려 15년 동안이나 보편적인 인생들의 바다에서 열외가 되다시피 하며 치열하게 길을 찾아 헤매다 어떤 분으로부터 줄탁동시의 기회를 얻어 한 순간 모오든 의문은 풀려버렸고, 타는 듯한 갈증은 내 안에서 생수가 터지듯이 시원하게 해갈되어 버렸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 하산하였고, 지금은 세상 속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생수를 찾는 많은 이들에게 말합니다. 지금 여기의 신 외에 그 어떤 다른 신도 구하지 말라. 다만 마음의 분별심만 내려놓아라. 그리하면 당신이 바로 지금 여기의 신이 되어 진정 도를 얻으리라.... 길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간절하게 愛타게 福音을 전합니다. 선생님의 그 愛타는 순수마음이 가슴 절절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모든 복음이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는 되고 또 그렇게 해보니 생활에도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온전히 스스로 지금 여기의 신이 되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전체를 잃어버린 개체의 마음이, 부처를 잃어버린 중생의 마음이, 보리를 잃어버린 번뇌의 마음이 더 많이 나를 더 지배하고 살아갑니다.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어떤 수련단체에서는 마음의 에고를 닦고 죽이고 버리는 탁월한 수행방법으로 깨달은 분이 직접 지도를 하여 불과 몇 일만에 온 몸과 마음으로 견성의 단계를 스스로 체험하도록 지도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수행지도를 받은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실제로 내면에서 생수가 터져나오는 것 같은 견성체험을 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합니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솔깃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깁니다.
하지만, 선생님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깨달은 분들의 글을 보면 자신이 직접 깨닫고 보니 닦고 죽이고 할 마음이 없는데 무엇을 닦고 죽인다는 것이냐, 단지 그것을 분별하는 그 분별심만 내려놓으면 될 것을 하면서 도닦는 자들을 안타까워하십니다.(아무리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많은 사람들은 사실은 따지고 보면 자신들도 그렇게 치열하게 도를 구한 결과 지금과 같은 경지를 살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음) 그러나 아직 그 경지를 경험하지 못한 나 같은 중생들은 그 말씀을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지만, 그것이 되지 못하니 이렇게 아직도 갈증을 느끼고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아닌 '그것이 되고자'하는 방법과 의지와 노력을 내려놓고 선생님들이 들려주는 복음으로 이따금 목이나 축이며 여전히 목마른 자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요즘은 아무리 낙후된 농촌이라도 하늘에서 비가 와야만 가뭄을 면할 수 있는 천수답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대부분의 농민들은 스스로 수자원을 확보하여 언제든지 마르지 않는 비옥한 논을 만들어 풍성하게 농사를 짓는 시대입니다.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의 글을 많이 읽어 보았지만, 김선생님의 복음이 언제나 현실적인
삶의 중심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것 같아 늘 감사하게 읽고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분의 질문이 너무나 절실하게 도대체 그게 무엇이냐고 선생님께 묻고 있길래 저 역시 마찬가지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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