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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와 싫다 그리고 선택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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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539회 작성일 06-08-2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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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삶이 참 보람되시겠습니다……."
무슨 얘기인가의 끝에 그가 문득 한 말이었는데, 저는 잠시 의아해 하며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요?"
"그렇게 남들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나누고, 또 그 나눔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함을 얻고 자신들의 삶 속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니까요."
"아뇨, '보람'이 아니라 다만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인연되어 오는 것도 감사하고, 그들이 이윽고 그 상처로부터 걸어나와 뚜벅뚜벅 자신들의 삶의 길을 힘있게 걸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감사하구요. 그래요, 다만 감사가 있을 뿐입니다……."
님은 제게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유를 선택하고, 싫은 것에 대한 자유는 될 수 있는 한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저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선생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신가요?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합니다.) 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친절하게 답 글 올려 주시는 것도 좋아서 하고 계실 것 같고, 선생님이 대구에서 계속 살고 계시는 것 역시 좋아서 그렇게 선택하시는 것이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아뇨, 저는 그 모든 일들이 좋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합니다. 그냥…….
내가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 무수히 떠돌아다니던 어느 날 문득 '나'를 만나면서부터 저는 비로소 '소유'가 아니라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인생(人生)에 대한 모든 '두리번거림'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곤 다만 주어지는 현실을 열심히 살 뿐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제 삶은 그때부터 절로절로 이루어져 갔습니다.
대구매일신문사 계약직 기자로 근무할 무렵 한문을 배우고 싶어 대구향교(大邱鄕校)에 등록해 이갑규 선생님으로부터 논어(論語)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처음 접해본 논어가 너무 재밌어 점심시간에도 책을 펴놓고 연신 옥편을 펼쳐가며 공부를 했는데, 두어 달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장동료들이 좋은 공부인 것 같으니 자신들에게도 강의를 좀 해달라는 겁니다. 이제 겨우 두 달을 공부한 사람이 무슨 강의라며 손사래를 치는데, 그러면 강의는 하지 말고 같이 읽어나가자는 거예요. 그래서 어줍잖게 논어를 읽어가며 매주 한 번씩 그 뜻을 풀어주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의 10여 년이 넘는 저의 '경전(經典) 강의'의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남들에게 경전 강의를 통해 '삶'을 얘기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대구공업고등학교 기간제 윤리 교사로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냥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며 웃고 울고 하는데, 어느 날 전기과의 한 학생이 쪼르르 달려와서는 난데없이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주겠답니다. 그때의 저는 '홈페이지'라는 말이 무슨 뜻이며 또 그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하여간 그런 게 있다면서, 받아보면 알게 될 터이니 자료를 하나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도덕경 1장'을 풀어 건네줬는데, 그것이 지금의 이 홈페이지로까지 발전하게 될 줄이야 그때는 몰랐었지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컴맹입니다.^^ 그저 글을 쓰거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들어갔다 나왔다만 할 줄 알뿐…….)
<아, 여기!>라는 제 책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한반도'라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는 홈페이지에 있는 '다시 읽는 도덕경'을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겁니다. 기왕에 올려진 자료이니 책으로 출판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하고 있었지만,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라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 마침 그런 제안을 받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그래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어 마침내 <아, 여기!>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책이 출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판(再版)도 나왔습니다만, 출판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그만 절판되긴 했지만요.^^)
그리고 10여 년이 넘는 세월동안 만났던 무수히 많은 좋은 사람들과 그 인연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구요!
그와 같이 제 삶은 절로절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어느 것 하나 '호(好)-불호(不好)'를 따라 '선택'한 적이 없건만,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오직 감사만이 있구요.
님이여.
인생(人生)이 어떻게 '좋다-싫다'만으로 살아갈 수 있으며, 그에 바탕한 '선택'만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삶' 속에는, 그리고 '나' 속에는 '좋다'와 '싫다' 모두를 아우르는 보다 깊은 무엇이 있으며, 더구나 우리 안에는 그 모든 것들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아도 되는 무한의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거기에 닿는다면 바야흐로 '호(好)-불호(不好)' 너머의 영원한 충만 속에서, 진정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바로 그것을 알고, 사랑하고, 누리며, 함께 나누기 위해 온갖 다양한 모양으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렇게 존재하며 살고 있는 것이랍니다.
고맙습니다.

* * *
좋다 와 싫다 그리고 선택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다다 06-08-25 13:09
김선생님, 아무 대가도 없이 이런 것들을 친절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점이 제게도 궁금했었는데, 답답할 수 있는 자유! 깝깝할 수 있는 자유! 고뇌할 수 있는 자유! 갈등할 수 있는 자유! 괴로워할 수 있는 자유! 이것도 자유다! 라는 말씀이시군요. 한마디로 "'자유란 감각적으로 좋은 것이다!'라고만 생각지 말아라!"는 뜻으로 봐도 좋을 것 같군요.
이 내용과 관련해서 여쭙고 싶은 것은 '좋다'와 '싫다'인데요. 저는 "싫은 것을 싫어할 수 있는 자유" - "좋은 것을 좋아할 수 있는 자유"와 "싫으면 하지 않을 자유" - "좋으면 할 수 있는 자유"만 자유라고 생각하고, "싫은 상태에 있을 수 있는 자유" "싫지만 OO할 수 있는 자유" "싫은데도 OO하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 경기도에 살고 있습니다. 저와 각별하게 지내던 제 작은 동서는 7, 8년 전부터 시간만 나면 미국! 미국! 하고 노래를 불러대더니 2년 전 결국 가족들과 같이 회사 주재원으로 미국에 파견근무 나가 살고 있는데, 5년 임기가 끝나고 연장근무가 허락되지 않으면 사표를 내고 어떻게든 거기서 살겠다고 합니다. 그렇게 절실히 바라니까 결국 그렇게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 한편 이 친구가 미국에 가서 살고 있는 것은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고, 저도 굳이 다른 나라에 가서 살 수도 있는데 한국에 살고 있는 것은 좋아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유를 선택하고 싫은 것에 대한 자유는 될 수 있는 한 회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저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선생님은 전혀 그렇지 않으신가요? (솔직히 이 부분이 제일 궁금합니다.) 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친절하게 답 글 올려 주시는 것도 좋아서 하고 계실 것 같고, 선생님이 대구에서 계속 살고 계시는 것 역시 좋아서 그렇게 선택하시는 것이고, 저 또한 이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질문 글을 올리는 것이 좋아서 하는 것입니다. 혹시, 좋은 것<을> 골라 선택하려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만> 골라 선택하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인가요?
어쨌든 질문을 써 놓고 보니, 제가 좋아하는 것<만> 계속 하고 싶어서 "뭐, 별 문제없습니다."라는 답변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그렇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또는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음이 편안할 수는 없을까요? 하는 뜻으로 여쭈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결국 선생님의 글 ...오직 그런 자유<만>을 구하니....이 대목과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의 문제를 현실에 비추어 다시 한 번 짚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용의 속성 때문에 제 위주로 너무 직설적으로 여쭙다보니 선생님께 큰 결례가 된 것 같아서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 널리 양해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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