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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대님 질문에 추가질문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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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사함 댓글 10건 조회 6,981회 작성일 07-09-1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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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말씀 항상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김영대선생님 질문에 자세히 답변해주셨지만 궁금한 부분이 있어 다시 질문드립니다
선생님 답변중에서
제게 있어서는 정말이지 '긴장하고 떠는 것'과 '편안하고 당당한 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 둘의 차이를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왜 하나는 좋고 다른 하나는 나쁜지, 왜 하나는 늘 그러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지……. 그냥 편안할 때는 편안하고 떨 때는 떨 뿐인데 말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이 주례사 하실때는 긴장하고 떠시느라 주례사를 망쳤다 하더라도 그냥그랬을뿐
잘했네 잘못했네 구분지으시지 않아야 분별하지 않는것 아닌가요?
벌어진일에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하객들의 눈치를 살피고 불안해 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 같은 경우도 평소에 많이 경험하는데 어떤것에 대해 잘 못했다고 생각되면 남의눈치도 많이보고 불편한 마음도 오래 가는데 이럴경우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잘했나 잘못했나 마음쓰지 않고 그냥 그럴뿐 이렇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요?

선생님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감사함님의 댓글

감사함 작성일

자유게시판 객님의 댓글을 읽고 그곳에 쓸려다 이곳에 질문내용을 보충해서 씁니다

객님이 말씀하신 내용중에

어떤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현재를 재단하는,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 라고 망상을 부리는
'분별심' 아니던가요?

'분별심'이 없다면
긴장하고 떨든, 여유롭고 편안하든, 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그냥 그럴 뿐이지요.

이런 말씀은 이해가 되는데요

선생님께서
주례사를 할때 긴장하고 떨었다고 해도
긴장하고 떨었던 여유롭고 편안하게 잘했던
분별심이 없었다면 그렇게 힘드시지
않아야 되지 않나 하는생각입니다

그때의 행동을 저항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아 내가 긴장하고 떨었었구나 ! 그래도 잘했어
이런마음이어야지 않나요?
그런데 지나간 일을 가지고 좀 심하게 남의 눈치를 살피고
잘 했다는 말을 해주길 기대하고 그런것은 좀 이해가 안가네요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더 나은 나가 되기를 추구하지 말라"입니다.
"부정에서 긍정으로"가 아니라 "긍정에서 긍정으로"라고 얘기하지요.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현재를 긍정한다는 의미가 위에도 썻지만 아 내가 긴장하고 떨었었구나 !
이렇게 내 행동을 인정하고 받아주는 마음이 긍정한다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뒤의선생님 말과 행동이 주례사때 떨었던것을 긍정(인정) 한다기 보다는
부정(싫어)하고 있다고 생각도 드네요

선생님께 따질려고 하는게 아니라 궁금해서요

감사합니다

또랑가님의 댓글

또랑가 작성일

'긴장'이 오면 긴장 '하나'를 살게 됩니다.

우리는 매순간 한번에 '하나'의 삶을 살지만 생각의 습으로 모르거나 잊고 있을 뿐이지요.

된사람은 '긴장'에 있으며 아직 되지 못한 사람은 '받아들임'이 필요하답니다.

된사람에게는 '받아들임'이 따로 필요치 않습니다.

매 순간 있는 그대로 '하나'의 삶을 살기 때문이지요.

편안함에 대비되는 '긴장'이 아닌 '긴장' 그 자체로 머물되 매순간 결코 고이지 않음이죠..

거참님의 댓글

거참 작성일

또랑가님은 눈치가 좀 빠르군!

무명님의 댓글

무명 작성일

갓난아기들을 보면 천진무구하다.
깨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아기들은 진정한 평화를 모르고 있다.
이미 그 애기도 부처지만, 잠시 착각하고 있기에
성장함에 따라 옮고 그름에 대한 잣대를 가지고
시행착오를 가지며 그 애기도 나름대로의 발전과 퇴행를 격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 보자.
갓난아기가 한 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는 이미 부처라면
김기태씨의 이야기는 옥상옥일 따름, 이미 일컬고 이야기할 화두가 성립되지 않는다.

두번째, 이미 모두 부처지만
잠시 착각하고 있다면
그 착각하는 대상도 엄연히 존재하기에
그 두번째를 이야기하며 김기태씨가 강론도하고 여기 싸이트를 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착각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것은 이미 본질과 '그것'은 그냥 그대로 일 뿐이지만
김기태씨도 옮고 그름에 대한 시비는 없지만
알고 모름에 대하여 절로 알 수 있기에 여기 이야기 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는,
한 순간 어떤 사람이 해오(순간적인 일별, 혹은 느낌)를 했다고 해서
이미 부처인 내가 착각을 여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왜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흔히 하는 말중에
'돈오돈수'가 많느냐 '돈오점수'가 많느냐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지만
그 차이점은 실지 공부를 하지 않는 이론가들의 탁상공론일 뿐이다.

그런데  중요한 개념(사실)이 있다.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미 시비하는 마음이 없기에 최상의 이완과 평화를 스스로 느끼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신과 하느님을 갈구하는 그런 완벽한 상징적인 대상이 아닌
참으로 저절로 그러할 뿐, 그런 평정과 자연스러움이 사랑으로 녹여든다.

그러면 어떤 진공묘유가 나타난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이며, 모든 에너지가 집중속에서도 이완되어
무위도인처럼 유미힐같이 변재가 무궁무진하게 된다.
저절로!

김기태씨를 폄훼하지 않지만
그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인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다만 나의 시비하지 않는 마음속에
그의 알고 모름이 나 스스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나의 생각일 뿐,
그대는 왜 그렇게 相에 집착하는가?
무엇이든지 추종하면, 그대는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법등명-자등명을 항상 생각하며 그대의 열린 마음을 가지라.

시비는 나의 시비가 아니고
그대의 시비일 뿐이다.

유명님의 댓글

유명 작성일

길.. 또 잘난 척을 하고 싶은가?
......

과객님의 댓글

과객 작성일

황당한 말이군요.
"모든 질문은 분별이다."
"난 항상 그런 분별을 벗어나 있다."
할 말 없음.

참나님의 댓글

참나 작성일

시비는 나의 시비가 아니고 "그대"의 시비일 뿐이다.

도우님의 댓글

도우 작성일

친구야,
자네가 "잘했나 못했나?" 하면서 계속 걱정해도 분별이 아니고,
내가 "이상한대요?" 하면 분별인가?
새도 허공을 날지만,
허공에 집을 짓지 않는다네.

자넨 아직도 높은 데 있다고 할텐가.
아직도 깨달음의 꿈을 깨지 못했는가.
우리 같이 땅을 딛고 가세나.

무병님의 댓글

무병 작성일

"시비는 나의 시비가 아니고 그대의 시비일 뿐이다."

"어떤 진공묘유??"
......

똥폼 재고 있네!!

가짢다!!  가짢아!!

그렇게 체, 척, 하면 부처되냐?

온달님의 댓글

온달 작성일

모든 생각과 행동은 분별심의 산물인데 분별심을 내려놓는다니
이 생각을 내려놓게 할 장사는 어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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