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의 자기소개 시간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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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8,445회 작성일 07-09-24 22:55본문
동영상 강의를 보고
궁금 07-09-18 23:39
항상 선생님의 좋은 말씀으로 위안을 삼으며 살고 있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김영대 님이 올려놓으신 김기태 선생님의 동영상 강의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주례를 서면서 많이 떨고 긴장하고 또 주례사가 끝난 뒤에 계속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으며, 밥을 먹고 난 뒤에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국 모임에 가서는 주례의 후유증 때문에 불안하게 인사말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생님의 경험과 비슷한 일을 저도 가끔 겪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라치면 가슴이 너무 뛰고 정신이 없죠. 그리고 그러한 자리가 예고되어 있으면 미리 불안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례할 때 떨고 난 뒤에 전국 모임에 가서도 불안해 하셨다고 했는데, 그런 모습은 일종의 가벼운 노이로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뒤에 강의에서는 딱지가 떨어져서 매우 잘 하셨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 딱지가 다행히 빨리 떨어지셨으니 뒤 이은 강의를 잘 하셨지, 딱지가 늦게 떨어지면 뒤의 강의도 망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을 의식하는 마음 때문에 노이로제와 불안을 겪어서 그러한 불안에서 탈피해 보려고 선생님을 찾는데, 선생님도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계시다니 좀 혼란스럽고, 선생님의 그러한 남을 의식하여 괴로움을 겪는 모습과 저 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떨고 긴장하는 것과 당당한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왜 그 차이를 모르시는 건지, 말씀이 조금 잘 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떠는 것과 당당한 것의 양자의 감정을 구별할 수는 있지만 그 두 감정에 대해 어느 것은 좋아하고 어느 것은 싫어함이 없다는 말씀이 아닌지, 정말 두 감정의 차이점을 모르신다는 말씀인지 거기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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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말씀을 들으니, 몇 해 전 어느 모임에 갔을 때의 기억이 생각납니다. 부산 무심선원의 김태완 선생님의 첫 금강경 법회 때의 일인데, 그때는 선생님께서 무심선원을 여신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선원 개원도 축하드릴 겸 해서 갔던 것이지요. 그런데 법회를 마치고 ― 설법(說法) 말씀은 너무나 좋았습니다! ― 자리를 옮겨, 법회에 참석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둥그렇게 둘러앉게 되었을 때, 어느 분의 제안으로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태완 선생님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부터 시작해서 한 사람씩 일어나 인사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음엔 제가 앉았던 자리가 그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순서대로 이어지는 인사말들을 그냥 편안히 들을 수 있었는데, 점차 제 차례가 다가오면서 저의 가슴은 어느새 콩닥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제 옆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서 인사말을 할 때에는 (좀 과장되게 표현하면) 거의 심장이 떨어졌다 붙었다 할 정도로 쿵쾅거렸고, 문득 제가 인사말을 하려고 일어섰을 땐 머리마저 하얗게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ㅋㅋ
그렇게 일어나서는, 제 차례가 다가올 때까지 제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며 뛰었던가 하는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이런 귀한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무척 반갑다는 인사말로 끝맺음을 하고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얘기하고 나니, 다음 사람부터는 일어났을 때 긴장하고 떨린다는 사실에 좀 더 편안해진 모습으로 각자의 인사말을 이어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님은 저에게 “남을 의식하는 마음 때문에 노이로제와 불안을 겪어서 그러한 불안에서 탈피해 보려고 선생님을 찾는데, 선생님도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계시다니 좀 혼란스럽고, 선생님의 그러한 남을 의식하여 괴로움을 겪는 모습과 저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셨네요. 그 차이점을 찾는다면, 저는 그런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는데, 님은 그런 님 자신을 부정하고 정죄하며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단지 그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저 자신의 모습들이 때로 오고 감에 늘 자유로운데, 님은 그런 님 자신의 모습들이 나타날 때마다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게 되는 것이지요.
또 님은 “선생님은 떨고 긴장하는 것과 당당한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왜 그 차이를 모르시는 건지, 말씀이 조금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하셨는데, ‘그 차이를 모른다’라고 한 것은, 감정의 차이는 분명히 느끼지만 매 순간 다만 그러할 뿐 어느 것을 취하거나 버리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나’인데, 매 순간 ‘나’ 아님이 없는데, 거기에 무슨 취사간택(取捨揀擇)의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네요. “물론 그 뒤의 강의에서는 딱지가 떨어져서 매우 잘 하셨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 딱지가 다행히 빨리 떨어지셨으니 뒤 이은 강의를 잘 하셨지, 딱지가 늦게 떨어지면 뒤의 강의도 망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라구요. 아뇨, 저는 때로 강의를 망치기도 합니다. 설명할 수 없이 말이 꼬이고 무겁고 또 매끄럽지 않게도 되어 사람들에게 힘겨움과 실망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번엔 제가 이렇게 님에게 묻고 싶습니다.
“님과 저와의 차이점은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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