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지금 ‘생각’에 속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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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태 댓글 0건 조회 7,444회 작성일 21-11-21 22:52본문
안녕하세요?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은 글의 맨 마지막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을까요?”
예, 님은 지금 ‘생각’에 속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록 한 순간 생각이 뚝 끊어지면서 문득 ‘이것’ 혹은 ‘이 자리’를 깨닫게 되어 삶에 많은 변화가 오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생각’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내내 ‘내’가 생각하며 생각이 곧 ‘나’인 줄로 착각하는 끊임없는 ‘생각과의 동일시’ 속에서 살아오다 보니, 깨어나고 난 뒤에도 집요하게 달라붙는 생각에 우리는 감쪽같이 속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오후(悟後) 공부란 바로 이 ‘생각의 속임수’로부터 순간순간 깨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님은 “그런데 모르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가만히 보면, 이 ‘모른다’는 것도 한 순간 떠오른 ‘생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그 생각의 내용물과 동일시되어, 있지도 않은 ‘나’를 ‘어떤 존재’와 ‘어떤 상태’로 규정해 버립니다. 즉, ‘모른다’는 한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모르는 주체로서의 ‘나’가 환영(幻影)과도 같이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나는 모른다’는 것이 실제(實際)처럼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한 생각에 정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곧바로 무언가 미진한 답답함에 사로잡힌다든가 스스로 위축되기도 하는,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혹시 모든 게 내 망상은 아닐까?”라는 등의 2차, 3차 화살을 또 맞게 되는 것입니다.
“모른다.”라고 말하는 ‘이것’은 알고 모르고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또 님은 “자꾸 살아야 될 이유가 없어지고, 애틋한 딸아이에 대한 정도 멀어집니다. 모든 사랑도, 열정도, 집착도 없어집니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예, 님의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것’이 드러나면서 한편으로는 거울명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소름 끼치게 싫었던 자신도 만나게 되면서 마음도 편안해지고 삶이 전부 저절로 알아서 굴러가고 이루어져 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열정도 사랑도 삶에 대한 의욕과 에너지도 꺾이고 고갈되는 듯 느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님의 공부가 깊어가는 과정 중에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님의 새롭고도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의 습(習)이 미묘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어느새 슬쩍 끼어들어 '과거의 쳇바퀴'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미묘한 생각의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딸아이의 형상이 눈앞에서 사라져 (모든 게 현실이며 동시에 허상임을 보고 느끼고 있었지만) 깜짝 놀랐습니다.”라고도 말씀하셨네요. 예, 본래 그렇습니다. 본래부터 모든 것은 현실이며 동시에 허상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실제감'을 동반하는 그런 체험이 잠시 스칠 수도 있는 것인데, 다만 그럴 뿐입니다.
‘이것’이 드러난 뒤의 공부 여정 속에서 님이 겪는 것과 같은 일은 흔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직 ‘이것’이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과 ‘생각 아닌 것’이 서로 뒤섞여―결코 뒤섞일 수 없는 것인데도 불구하고―자주 혼동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그러나 순간순간 ‘생각’임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속지만 않으면 본래 아무런 일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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