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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월 산청모임 "삶에는 본래 아무런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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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름가지 (183.♡.203.138) 댓글 2건 조회 298회 작성일 20-02-1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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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월 대보름입니다. 환한 대보름달이 기대되는 오늘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 반갑습니다. 삶은 항상 처음처럼 펼쳐지는데, 우리는 늘 고정관념속에서, 고정관념인지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원래 우리 삶이 부드럽고 편안하고 빛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다만 무언가 하나를 놓치고 있기에 아이러니 하게도 불만족 속에, 삶의 실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우리의 경험상 불만족 속에 있다고 여기는, 무언가에 속아서 있지도 않는 결핍 속에 살아갑니다. 늘 여기에 있으나 속아 없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는데, 이 강의를 통해 그 진실을 드러낼 수 있어 감사한 시간입니다.



●'보물찾기', 오늘 우리가 나누는 보물찾기는 감추어진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 드러난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물찾기'라는 단어가 어쩌면 맞지 않는 단어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게 보물인데, 이것 말고 다른 것이라 잘못 생각하고 오해하는, 보물을 버리고 보물을 구하니 그 보물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하는 것은 지금 있습니다. '미래에 있을거야'하는 것은 모두 생각입니다.



●진리는 삶의 이런 저런 질곡에 물들지 않습니다.세상 모든 만물들이 햇살로 살아가고 그 햇살을 온통 다 사용하더라도 그 햇살은 그대로입니다. 온 세상 만물이 햇살을 모두 써도 달아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발견하기만 하면 무너지거나 서거나 상관없이 늘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찾을 필요도 없고 애쓸 필요도 없이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나가 잘못되었습니다. 그 생각하나만 바로 잡으면 바로 그것입니다.



●"삶에는 본래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가 없다', 삶에는 본래 잘못된 것이 없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삶에서 나타나는 것은 다 좋다, 삶에는 해결해야할 숙제가 없다, 풀어야할 과제가 없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미 다 해결되어 있다, 삶에는 '고'가 없다, 이미 치유되어 있다, 어느 누구도 괴로운 자가 없다, 그러니 따로 치유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삶에는 아무런 결핍도 없다, 이미 충만하다, 이미 완전하다, 지금 이 말들이 수긍이 됩니까? 그러나 삶은 문제 투성이고, 문제 다음에 또다른 문제.....이런 측면에서 오늘의 주제는 참 도전적입니다.



●'삶에는 본래 아무런 문제가 없다'에서 '본래'는 처음부터, 애당초 문제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그리고 죽을 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실제의 삶, 삶이 펼쳐지는 순간은 '지금'입니다. 그리고 그 상황속에 있는 나, 지금 내가 경험하는 이것, 지금 이것이 삶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삶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강의를 들으러 온 것은 힘들고 답답해서, 삶의 만족을 어떻게 얻을까하고 왔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의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가르침 또한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로 여겼던 그것이 문제가 아님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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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 대고, 대고, 고독하고, 실제 경험하는 것은 늘 힘든.... 설날 연휴에 집에 여러날 머무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무기력한 자신을 보면서 너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공부가 되었다싶으면 어느순간 한없이 무너지는 자신을 보게되는, 열심히 살아왔는데 딸이 먼저 죽게되는... 이건 문제가 없는게 아니죠....불만족, 부당하고, 억울한, 삶은 늘 새로운 힘겨움으로 다가오는데, 어느날 전환이 옵니다. 그 힘겨움에 물들지 않는.... 그 힘겨움에 물들지 않는 자리를 발견하게 되는, 그 힘겨움이 진리를 드러나게 합니다.



●실제 삶은 '지금'입니다. 삶은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들고, 잠들고 나서 꾸는 꿈까지, 삶은 늘 출렁거리는데, 이 경험들이 기억속에 들어가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 집니다. 이 삶이 경험하는 내용들을 드러내 보면 아주 단순해 집니다. 희,노,애,락,애,오,욕, 무기력, 기쁨, 힘겨움, 안절부절 못하는, 보고,듣고, 맛보고, 냄새 맡는, 접촉하고, 생각, 느낌, 감각... 이 삶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이게 해탈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삶 자체가 너무나 뜻밖에도 해탈이고 진아입니다. 이 삶이 진리니 이미 나는 자유이고 모든 것이 해결되어 있고, 여기에는 '고'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 이대로가 해탈입니다. 오랜시간 구해왔던 해방이 곧 삶이고 우리가 이미 해방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하는 것과 여러분의 삶이 1미리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원래 '고'가 없는데도, 늘 '고'를 당하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딱 하나 있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저항'입니다. 우리가 원치 않는건 잘못된거야하며 '저항'합니다. 이런 것이 와야 좋다는 하나의 기준이 있습니다. 지금 이것밖에 없다는 것을 확연히 알면 저항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올라오는 이것말고, 자기가 쥐고 있는 기준이 있어 지금 올라온 것을 밀어 내는 것으로 삶의 온갖 문제가 생겨나게 됩니다. 생각 속으로 싸악~들어가 버리면서 그것이 실제가 되어 버립니다. '저항'이 생겨나면 그것과 쌍으로 '추구'가 따라옵니다. 오직 밀어내기에 추구가 동시에 생기는, 이것 아닌 저것, 지금 있는 것을 밀어내고 미래에 이루어질 거야 하는 생각속으로 빨려들게 되고 그것이 실제가 되어버립니다.



●저는 탄생자체가 괴로움이었고 그래서 떠났습니다. 저는 저의 외적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주눅들고, 어느 순간에도 나답지 못했습니다. 게을러도 성실한 척, 삶 모두가 가식이고 위장이었는데, 이것을 다르게 보면 진리가 나를 부르는 초청장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나를 경험하는 것은 괴로운 일인데, 그때 당시에 저는 잘 몰랐습니다. 늘 헛헛함을 경험하는데 이것이 부름입니다. 저는 결핍과 구속감이 컸기에 자유에 대한 갈망 또한 컸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갔습니다. 그 끝에 가보니, 본래 이 자리와 똑같은데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 말은 본래 이 자리, 삶이 곧 진리라는 말입니다. 진리는 있다가 없는게 아니고 항상 있는 것입니다. 내가 고통받고 괴로워하더라도 그때에도 진리는 이었습니다. 다만 따로 찾고 구하는 것으로 자기 스스로 구속되어 버립니다. '이건 아니잖아, 여기에 어디 자유가 있어'하며 생각을 움직이는 것으로 곧장 어긋나 버립니다. '에고'의 속성은 자기를 드높이고 싶어합니다. 이게 나야하면, 나 아닌게 생겨나고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면 남에게 미움 받을 것 같아, 다른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지금 이순간 경험하는 바로 그 자리, 그 느낌, 숨막히고 메마르고 스산한, 그것이 바로 완전함입니다. 지금 올라오는 그 어떤 것도 완전함입니다. 진리는 지금 내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경험하는 결핍, 불만족을 한번 제대로 경험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것에서 도망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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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은 지금 이대로 잔치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잔치에 초청받아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초청받았느냐? 지금 이순간 올라온 그것으로, 모든 순간으로, 모든 순간이 초청장입니다. 사흘동안 무기력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하며 저항하다가, 이게 '생각이잖아'하면서 그 순간을 바로 보게 됩니다. 그냥 무기력하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면 무기력이 없고 그냥 평화만 있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새로운 배움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기쁨, 환희, 외로움, 심심함' 이게 사실 이름만 다릅니다. 그러니 무기력에 머물러 보십시오. 그러면 거기에서 영원한 호흡을 하게 됩니다. 경험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처음에 그것은 아주 작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그것이 점점 우주를 뒤덮어 버립니다.

슬픔, 외로움, 냉기밖에 없는데 그걸 계속 만나니 거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느껴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저항하지 않으면 자각의 힘이 커지고 어느날 문득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토록 찾고 있는 그것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힘듦속에는 힘듦이 없습니다. 사실 나타난 모든 것이 나타나지 않은 것의 표현입니다. 그러니 달아나지 않으면 됩니다.




<야단법석>

○선생님은 끝을 보셨습니까?


●정말 끝에 가봤는데, 사실은 끝을 향해 달려가던 '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내가 해탈하면...'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해탈하려는 '나'가 사라져 버리는 것, 그것이 해탈입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해탈은 '나'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눈길을 '자신'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밖을 향해 있고 그로인해 우리 마음도 늘 밖을 향해 있는, 그 눈길을 자신으로 향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생각의 패턴들이 인식되면 삶이 풀려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남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끊임없이 '척'하고 꾸미고 포장했지만 저는 제가 그런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진실하게 살고 싶은 간절함이 우연한 기회에 꾸며낸 나, 만들어 낸 나, 뒤틀린 나가 턱하고 보였습니다. 단 한순간도 진실한 적이 없었던 자신을 봤습니다. 30년간 진실한 삶을 살아오려고 몸부림쳤는데, 가식하고 포장한 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고나서 거짓의 나를 45일간 일기장에 적어 나갔습니다. 그것은 진참회였습니다. 어릴 때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받으려고 몸부림치다 괴물이 되어 있었던 나, 그 한번의 돌이킴 그로인해 인정하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아픔을 겪으면서 '나'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인것을 인것이라 하고 아닌 것을 아닌것이라하는 시인과 인정으로 모든 것이 풀려 나가게 됩니다.



○저는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고, 항상 아버지를 도왔고, 항상 맏이어야 한다는,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당신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데, 삶의 무게가, 그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가 살펴지면 점점 문제가 해결됩니다. 무언가를 결심하고, 그게 잘 안되면 후회하고 다시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한 반복됩니다. 이처럼 후회와 다짐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내 탓이오' 하더라도 절대 되지 않습니다. '생각의 패턴' 위에서 반성을 하기에 그 생각의 패턴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지 못합니다. 이런식으로는 단 한순간도 진실되지 못합니다. 마음의 표피위에서 후회하고 다짐하고 철저하게 살려하는데 마음을 일으켜 노력하는 것으로는 결코 오지 않고 불가능합니다. 저는 가식적으로 살면서도 그것이 가식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단 한순간 돌아섰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이처럼 진실의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공부하는데, 그 '목표', 깨달음을 추구하는 한 깨달음은 없습니다. 진짜 공부가 되면 공부가 사라집니다. 당신은 공부를 놓는게 '공부'입니다. 그냥 하시는 일만 하십시오. 종이에 기름이 묻으면, 그 기름을 빼기 어렵습니다. 다 놓아버리고 그냥 살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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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합니다.


●달걀이 노른자와 흰자로 있으면 편안합니다. 그런데 어미가 품으면 병아리가 되는데 여전히 흰 껍질에 갖혀 있게 됩니다. 그때 답답해 합니다. 그 답답해하는 것을 어미 닭이 알고 어미닭과 병아리가 동시에 껍질을 깹니다. 그것이 줄탁동시입니다. 그러니 '답답하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삶에서 경험되고 나타나는 것이 답입니다.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아니면 자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알려하지 말고 '모름'속에 있어 보십시오. 그 모호함이 답을 줍니다. 그 모호함속에 분명함이 있습니다. 당신은 좋은 기회속에 있습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 책을 읽는다는 것은 회피입니다. 명상도 회피입니다. 나타난 이것이 그것입니다. 나타난 것을 손대면 안되고 그냥 허용하십시오. 그것이 사랑입니다. 누군가 떠오르고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때 그 어떤 것도 하지 마십시오. 올라온 그 어떤 것도 선입니다. 다 좋은 것입니다. 자세하게 물음으로써 다 알고나서 행하려하지 말고, 분노가 일어나면 그냥 허용해 주십시오. 그로 인해 잠이 오지 않으면, '그래 오늘 잠은 끝..'하며 그것을 허용해 주십시오. 화를 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몰됩니다. 이렇게 함몰된 사람은 반드시 후회와 화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되고 이 패턴이 계속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만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허용입니다. 저도 커피를 마시면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자려는 마음을 내려 놓습니다. 그러면 이것 자체가 각성되어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전부 보게 됩니다. 허용하면 생각의 패턴이 보입니다. 허용속에서 자신을 만나가게 됩니다.



●'좋고, 의롭고, 맞고' 이게 놓기 힘든 것입니다. 제가 처음 눈떴을 때 그 어떤 경계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텅비게 되면 모든게 다 인정됩니다. 저 사람은 교회에 갈 권리, 저 사람은 천주교에 갈 권리, 그들 모두 자기의 길을 갑니다. 모두의 일이 인정되기에 '사이비야'하는 차별이 들지 않습니다. 자유는 모든 틀이 사라지게 되고, '너는 틀렸어, 너는 사이비야'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틀이 사라지고 나면 천주교에 가던 교회에 가던 절에 가던 그 어디도 상관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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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3월에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새벽님의 댓글

새벽 아이피 (59.♡.19.188) 작성일

늘 좋은 글, 전달 감사합니다~

서정만♪님의 댓글

서정만♪ 아이피 (59.♡.102.98) 작성일

매번 좋은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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