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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3 산청모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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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름가지 (117.♡.178.162) 댓글 8건 조회 7,663회 작성일 18-03-1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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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주일간 저는 밤 10시까지 근무를 했습니다. 그래서 산청모임에 가기엔 몸이 무거웠습니다. 그래도 뭐, 제 할일이 있으니깐 나갔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1시간 50분에 이르는 긴 시간의 강의, 전 가만히 선생님 강의에 귀를 기울였고, 정말 다른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몰입해서 들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강의가 어떠했냐고 선생님이 묻습니다. 저는 살짝 박수를 쳐 드렸는데요, 선생님은 신명이 나서 강의를 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오늘은 선생님의 강의가 훌륭해~하는 생각조차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할 만큼 강의가 훌륭해서이겠지요~~^^(그런데 이런 날이면 그 후에 제가 피곤해집니다. 정리할 것이 배로 늘어나니까요ㅠ~)






▶3월, 아직 춥고 봄기운이 느껴지지 않죠!, 얼마전에 날씨가 잠시 풀릴 때 뒷산을 올라가는데  산수유꽃이 피었었습니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생명의 솟음으로 피었는데, 그뒤 다시 추워졌을 때, 그 산수유꽃이 걱정되어 다시 그곳에 가보았는데, 추위와 눈이 가득했지만 그것이 산수유꽃을 어찌하지 못하는, 대견하고 고맙게도 굿굿하게 피어있었습니다. 여기 산청이 추워서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 주차를 하고 내리니 수양매화가 피어 있었습니다. 차문을 열 때 그 꽃가지가 항상 차문에 걸려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데, 그 꽃이 조금 피어있었습니다. 내려서 그 향기를 맡으니 제 형혼이 싯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너무 좋았습니다.

 세상에 늘 피어날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여러분,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이 품고 온 이야기와 눈빛들을 함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지난 겨울 추위가 매섭고 길었는데,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봄의 기운이 느껴지는 지금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좋습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저는 따로 강의 준비를 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냥 울리는 대로 하게되는, 오늘 문득 이런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귀향', 여러분이 고향으로 돌아간다하면 어떤 마음이 되십니까? 편안함, 설레임, 안도감...객지 생활이 힘들었던 사람들은 더 깊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늘 외면당하고, 삶의 어디에도 점찍지 못했던,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아무런 조건없이 받아들여지고, 어머니의 품에 편안히 쉴 수 있는, 때로 펑펑울 수도 있는, 고향에서 그렇게 에너지를 받아 다시 자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따뜻함, 사랑을 맘껏 경험하고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귀향',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시간의 고향에서는 에너지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은 짧습니다. 그래서 다시 척박한 땅으로 돌아가서 긴장과 서걱거리는 삶이 펼쳐지고 다시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런데 제가 여기에서 말하는 고향은 특정한 시공간이 아니라, 본향, 한번 거기에 돌가게되면 다시는 그곳을 떠날 필요가 없는,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그 자리, 왜 이 주제가 생각났느냐면, 우리 인생의 삶을 보면, 태어남 그 자체가 녹록치가 않습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 거의 대부분이 상처가 많은, 살아 있다는 것이 아픔으로 다가오는, 그래서 늘 충만한 존재가 되고 싶은, 이 탄생 자체가 무엇인가를 그리워하게 하고 타향살이와 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혹한 환경에 노출되고, 지속되고, 그로인해 관계를 맺지도 못하는, 살아 있다는 것이 늘 아프고 괴로운, 그렇기 때문에 태어남 자체가 타향살이인데, 그 힘겨움 속에서 끊임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하는, 그래서 그리움을 채워 보려고 이런저런 몸부림을 치고 수행을 하는데, 펼쳐진 삶은 고달프고 그만큼 그리움은 깊은데, 그와는 달리 그 깊고 영원한 안락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몸짓들이 전부 그리움을 향해있지만 그것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참 드뭅니다. 삶의 고통을 끝내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길을 말해 보려 이 주제를 떠올렸습니다. 영원한 고향, 다시는 떠날 필요가 없는 그 영원한 고향을, 이 영원한 고향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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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도에서....섬으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이곳은 보길도, 청산도, 소완도, 그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섬에서, 작은 섬에서 큰섬으로 유학온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 고향에 돌아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을 합니다. 평화와 분리되어 있고,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착각하나 내려 놓으면 됩니다. 지금 여기, 여러분의 삶속에, 존재 속에 고향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들어 보았겠지만, 지금 내 삶은 그렇지 않아 이런 제 이야기가 의심스럽고 막연하게 들릴텐데, 고향이 여러분 존재속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늘 고향에 있습니다. '나는 분리되어 있고, 메마르다'는 생각하나만 지워버리면 되는데, 토토님이 공지글에 '비로소 멈출 수 있게 되었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우리는 멈추면 됩니다.


▶어느 분이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이를 낳았는데, 행복하지 않고, 아이가 사랑스럽지도 않고, 남처럼 느껴지고, 같이 있는게 답답하고 힘들다고', 태어나서부터 엄마와 따뜻한 눈길 한번 나누어 보지 못한, 관계를 맺어보지 못한, 이런 아이들은 육체는 자라지만 영혼은 성장이 멈추어 버립니다. 억압당하고, 쫓기면서 항상 긴장하게 되고 불안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라지 못한 아이가 내면아이인데, 대부분, 이 세상엔 어른은 없고 어린아이밖에 없는, 그리고 이것은 어른이 되고 싶은 갈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이를 낳는, 그러니 아이에 대한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게 당연합니다. 자기안에서 일어나는 그것, 그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어쩔 수 없음을 이해하고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대뜸 그런 자신을 심판합니다. 더 깊이 만나고, 보듬고 껴안아주는, 그것이 어쩌면 참된 생명의 발현인데, 그것을 내치면 사랑도 그칩니다. 아직은 혼란스럽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긍정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천인공노할 거친 감정이지만 그것을 품어봄으로써 고향에 있는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고향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입니다. 여러분은 태어나서 여러분 자신으로 살아왔고, 죽을때까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고향을 떠나 본적이 없고, 태어나기 이전부터 죽음이후까지 고향에 있습니다. 이분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 대한 거친 감정이 일어나는데 그것까지 고향입니다. 그런데, 엄마가 어찌 이런 몹쓸 마음을 품을 수 있어 하고 자신을 내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미진한 존재입니다. 이게 곧 고향입니다. 내가 고향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고향이 주는 안도감과 편안함을 누리지 못합니까? 그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거부하고 내치기 때문입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다 없애야해하는 생각 때문에 고향에 있으면서 고향을 떠난 것입니다.


▶온갖 감정, 느낌, 생각들이 일어나는데, 이 흔들림, 이 움직임이 움직임이 아닙니다. 이 변화하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 흔들림, 움직임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것의 표현입니다. 언제나 쭉정이의 삶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거부하고 외면하는, 깨달음을 따로 찾기에 그렇습니다. 외면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힘들어 보면, 그렇게 품고 안고 기다려주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에너지가 바뀌게 되고, 늘 외면할때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되는, 남들은 알지 못하는, 그것을 맛본 자만이 알게되는 미소를 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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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도 봄이 왔어요. 



▶영원한 고향이 어디에 있느냐? 그 귀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평화를 찾지 말고, 지금 내게 있는 불편함을 만나보고, 내가 바라는 마음을 추구하지 말고, 지금 여기 있는 것을 만나면 영원을 만나게 됩니다. 삶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태어나면서 고통이 있습니다. 그 고통이 우리에게 근원을 묻게 합니다. 우리 인간은 일시적인 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존재가 영원이기 때문입다. 고통과 결핍이 끊임없이 우리를 가르쳐 줍니다.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계속 거부하고 외면하는데, 그것은 끊임없이 계속 오게되고 어느순간 저항을 탁! 놓게 됩니다. 그리고 포기하면서 알게 됩니다. 고향에서의 그 편안함을 깊이 맛보게 해주고 싶어서 이것이 계속 내게 온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사바세계가 불국토임을 알게됩니다. 이것들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풍요롭게 하는 정말 중요한 것들입니다. 뭐가 바뀌었습니까? 지금 올라오는 것은 다 똑같은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하나가 바뀐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 올 때, 이게 또와!하며 외면하면서 보지 못한 것들이, 자기자신을 제대로 만나면, 내가 단 한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는, 그렇게 되면 이 삶이 복되고 행복하게 되고 감사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 있는데, 고향은 여기 있는데, 제 몸짓, 제 목소리, 저를 보는 여러분의 눈, 바로 여기에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우리의 무지와 착각이고, 삶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좀더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훤히 드러나 있는 이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엇이 보입니까?(칠판에 점을 하나 찍으며). 우리의 감각기관이 익숙한 것에 머물러 익숙한 것만 보는데(점), 사실 이 점과 칠판이 같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 형상(이름)만을 쫓아가고 형상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은 보지 못합니다. 탁!, 이 소리, 소리는 금방 있다가 사라집니다. 경험가능한 소리, 소리를 경험하려면 그 바탕에 고요가 있어야 합니다. 이 고요는 언제나 있고 영원한 것입니다. 여기 소리와 침묵이 같이 있는데 그 침묵은 감각하지 못합니다. 여려분은 저를 볼 때 저의 이름과 형상만을 봅니다. 이것도 이 공간(허공)이 있어야 감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습관만 버리면, 조금만 주의깊게 볼 수 있으면 이 바탕을 볼 수 있습니다.

 제 팔이 움직이고, 내가 먹고, 내가 움직이고, 그러나 좀더 주의 깊게 보면 '이것'이 먹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움직일 때 내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움직이는게 아니라, 의식(불성)이 움직입니다. 이 의식은 설명할 수 없는데, 만약 의식을 잃어버린다면 지금 즉시 그냥 쓰러질 것입니다. 나를 서있게 하는 힘은, 이 육체, 아니면 결심이 나를 서있게 합니까? 나를 서 있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 보게 하고 듣게 하는 힘은, 의식입니다. 이 의식이 없으면 눈하나 깜박이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순수의식, 절대의식, 내가 듣고보고 느끼는, 자연을 보는데, 사실 조금만 주의깊게 바라보면 '이것'이 봅니다. 나라는 에고조차도 의식의 물결입니다. 이 몸이 나다라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까, 내가 움직인다고 착각합니다. 이 '나'라는 에고가 얼마나 집요하냐면, 어릴 때 동일시 되면서부터 이게 삶을 완전히 지배하는데, 우리 삶의 구체적인 부분을 보면 모든게 무의식적입니다. 우리 삶은 대부분 무의식적 삶입니다. 몸은 여기 있는데, 생각은 딴곳에 가 있습니다. 대부분 생각속에 살아가다보니 몸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그래서 몸이 없는 귀신으로 살아가는, 대부분 무의식 무자각으로 살아갑니다. 고통과 괴로움이 올 때 그것을 만나게 되면 그때 무의식을 의식으로 바꾸게 됩니다. 무기력을 만나면 의식이 각성되고, 의식이 깨어있게 됩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나'입니까?, 내가 움직이고 서있는데, 의식이 없으면 그냥 쓰러지게 됩니다. 모든게 불가능하게 됩니다. 내가 움직이고 보고, 먹고, 듣게 하는게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불성은 어디에 있느냐? 작용속에 있습니다. 걸어가는 거기에 있고, 옷을 입는 거기에 있는, 서있게 하는 이 힘, 망상하고 말하는 이것, 이것도 의식이 하는, 모르겠다는 생각도 의식이 있어야 가능한데, 내가 보고 내가 생각한다고 오해합니다. 보는데, 이게 의식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속에 드러나 있는 이것, 모습만 다르지 의식의 작용은 같습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이 모든게 가능합니다. '만약 내가 의식을 잃는다면 이렇게 걸을 수 있나, 의식이 없다면 잠에서 깨어날 수 있나, 몸의 동작, 모든 몸의 동작에 의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주의깊게 바라보면, 이렇게 하는게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것인데, 이러다보면 무엇인가 감각되기 시작합니다. 무엇인가 고요한 것, 예수가 말했습니다. 열처녀의 비유를 들며 인자는 도둑같이 오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살아가는데, 주의깊게 동작을 바라보게 되면 점점 자기안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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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비 내리는 날 완도에서, 우울을 친구삼아~




▶의식이 태어나면 이 몸이 자신이라는 굴절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내가 태어나고 죽을 것이라는 유한한 존재로 한정시켜 버립니다. 이때 그것을역이용하면 됩니다. 이 움직임, 호기심, 이 의식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움직임을 하다보면, 계속하다보면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이 바탕,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면 탄력이 붙게되고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러면서 나라는 생각, 개체성도 저절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여기에 머물려고 하는 것으로 점점 뿌리내리게 되면서, 우리가 일으킨 모든 생각들이 사라집니다. 나, 너, 남자, 여자, 이런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갑니다. 깨달음은 어느 누구도 쓰지 않는 사람이 없고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이 본향입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내가 자유고 사랑이고, 행복이고, 모든 것입니다. 자족하고, 자명하고, 스스로 즐거운, 무엇인가를 해서 즐거워지는게 아니라, 무엇을 해도 즐겁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운.....


▶스스로 알게됩니다. 감정, 느낌, 생각을 만나면, 이것이 근원(의식)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아플때 이것에 손대면 안됩니다. 노력하고 수고해서는 결단코 만나지 못하는 그것, 그것이 의식에서 올라옵니다. 산을 올라가는 길은 다양합니다. 결핍이 큰 사람들은 자기 감정을 만나면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평화를 만나게 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바탕에서 자기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바라볼 수 있다면, '의식이 없다면 이 동작이 가능하지 않다'고하며 탐구해 가면 진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재미있게 됩니다. 우리는 고향을 떠나있지 않습니다. 약간의 호기심, 삶의 고통이 우리를 근원으로 이끕니다. 배움에는 끝이없고, 이런 이야기들이 여러분을 깨우고, 여러분의 삶을 조금 다른 각도로 보게 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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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보다'의 명사형이 '봄'이 아닐까, 세상을 '보기위해' 깐죽거리는 호기심 가득한 새싹들.....



<야단법석>


▶허리디스크로 고생하고,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하라는 소릴 듣고, 너무 겁이 나고, 그러면서 병원을 나서다가 내가 무기력을 받아들인 것처럼, 내가 내 감정을 만난것처럼, 허리디스크를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내는 마음의 위대함, 지금까지 허리가 아픈 것을 원망하고 한탄만 한, 비난과 거부만 있었는데, '이 허리통증을 만나보려는 마음'을 낸 것도 사랑입니다. 만나보자라는 마음을 낸 것, 이전엔 내본적이 없는 그 마음이 육체로 그대로 갑니다. 그 하나의 마음이 이미 몸을 치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있는 그대로의 통증을 만나기로 마음을 낸 것은, 아픈 것, 통증이 여전히 심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감싸는, 그렇게 돌이킨 그 마음이 이미 치유를 시작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통증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마음을 보면, 거부가 느껴집니다. 이미 그 육체적 고통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실험을 하고 받아들이려는 그 마음 밑에 거부하는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됩니다. 사도바울은 허리가 아팠습니다. 힘있게 전도하고 싶은데 늘 허리가 아파 기도를 하게됩니다. 내 고통을 당신이 압니다. 이 허리만 고쳐주면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겠습니다. 그러자 응답이 왔습니다. '이미 족하다', 그러면서 그 허리통증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고통이 항상 주님의 은혜에 깨어 있게 하는 등에라고 말합니다. 거부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온전히 그 육체적 고통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열처녀 이야기를 하셨는데?


▶인자는 언제 오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일상 생활속에서 그것을 계속 목격하는, 방안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그것을 주워야하는데, 너무 더럽다 생각해 줍지 못하고, 그걸 줍지도 못한다고 자신을 정죄하는, 밥을 먹으면 살이 찌고, 그러면 사랑받지 못하고, 그래서 밥을 먹지 않고 사탕을 대신 먹게되는, 그런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한,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 어느순간 크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됩니다. 모든 상황이 거지같고,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고 언니에게 한탄하는데, '그게 너야, 그게 너란 말이야!!'하는 언니의 외침에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는, 그러면서 마음이 쉬어지는,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면서 치유가 시작되게 됩니다. 그러다 절에 가서 지내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전체를 보게 되고, 그때부터 조금씩 밥을 먹게되는, 그러다가도 어느날은 아이밥을 하고 그 밥맛을 보다 맛이 없어 퇘!하고 내뱉다가 자신이 평생 이렇게 밥을 거부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보게되며 피눈물이 나는....이와같이, 인자가 언제 올지 모르니 늘 깨어 있으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 자신의 증거가 됩니다.허하다고 하면서 내가 가질 것이 없어서라고 말했는데, '진실로 내가 가질 것이 없구나'하는 이해가 오면 자유가 옵니다. 진짜로 그것을 알면 정반대로 충만이 옵니다. 지금 우선은 다른 것을 찾아가지 말고, 지금은 내 안에서 올라오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이 근원의 자리에 머무르는 힘이 강해지면 그 길을 좀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몇몇분들은 제게 의식이야기를 하면 일반 사람들은 어렵다. 그냥 늘 하던 이야기만 해주시라고 말합니다. 아픈 사람들에겐 제 이야기가 쉽게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냥 살만하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겐 제 이야기가 별로 다가가지 않습니다. 그냥, 나를 만나면 에고가 사라집니다. 무너지는데 함몰되지 않는, 그 나를 만나는 것으로 성장합니다. 제가 강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의식의 길, 이 두번째 길은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강의를 하는 사람이고, 그냥 단순히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 제가 이해가 깊어지면, 지금 해오는 이야기들을 더 힘있게 그리고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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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기억속에 결핍이 없는데, 집에서 차별이나 상처받은 기억이 없는데, 제 자신은 정작 열등감이 심합니다. 저는 그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제가 상처의 경험이 있는데,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무엇때문인지, 제 안에서 일어나는 이런 열등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전생에 무슨 문제가 있나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지금 일어난 이것에 사실 모든 정보가 다 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알기위해 과거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내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왜 불안한지를 알기위해 과거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납득하려들지 말고, 진짜 납득은 지금 일어나는 것을 인정하고 시인하는것에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 일어난 열등감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래서 과거로 가서 이유를 찾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납득은 만남에서 옵니다. 머릿속에서 찾지 말고, 불안이 확 일어날 때가 기회입니다. 당신의 말을 들으면, 불안이 일어날 때, 내가 불안해할 이유가 없는데 내가 왜 이러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과거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게 지금 올라온 것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올라온 것을 직접적으로 만나면 그것으로부터 모든 것을 이해하게되고, 자기자신을 위해 진정으로 울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열등함을 느낄 이유가 없는데'하는 이게 지금 올라온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열등감이 올라올 때 그때가 하늘의 은총입니다. 이게 내게 진정한 자유를 주기 위해 찾아온 것입니다. 이게 복입니다. 열등감과 불안을 만나십시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삶의 엑기스를 만나본 적이 없는 당신, 진정한 삶의 엑기스를 살 수 있는게 지금 올라온 '불안'입니다. 지금 올라온 불안, 그것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진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열등감이 없는 평화를 만나려 하기 이전에 열등감을 만나면 평화가 저절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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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겐 분노가 있습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 그 분노가 일어나면서부터 사라질때까지 쭉 지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렇게 만나도 제 삶은 변화하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당신은 읽은 것이 많거나 개념이 많거나, 분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하는, 해결하기 위해 의도와 목적이 내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그러나 의도와 목적이 있으면 절대 그것을 만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만남이 아닙니다. 의도와 목적을 두면 절대 만나지 못합니다. 분노라는 생명은 그 에고의 의도를 즉각 알아차립니다. 에고의 의도와 결과는 항상 반대입니다. 아주 오래전, 어떤 부인, 열심히 일하면서 살려고 하는데 남편은 한량이라, 그러면서 그분은 자기가 열심히 일하면서 먹여살리테니 당신은 열심히 공부만하라, 그러나 이 남편은 늘 술만 마시고, 그래서 이분이 분노가 자꾸 쌓이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날 제게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제가 그새~끼 죽이러 갑니다!'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가라, 죽이러 가라, 나머지는 내가 책임질게, 가서 죽여버려라, 내가 책임질게', 그러면서 이분은 집에까지 가서 문을 쾅!!!하고 열어제기고선 '야, 이 개~새끼야~'하려고하는데, 그순간 분노가 사라져 버립니다.(남편이 묻습니다. 당신 여기 이시간에 왠일이야?, 아니, 뭐, 당신 잘있나 보려고....) 만남은 직접적입니다. 평화를 얻고싶으면 의도와 목적을 버려야 합니다. 분노가 폭발할 때 내가 완전히 망가지리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제대로 보여주리라하는 마음을 내보면, 그런 모습을 펼치기도 전에 해결됩니다. 의도를 가지지 않고, 지키려하거나 분노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방어하지 않는, 그리고 그 순간이 제대로 화를 내 본 첫 순간입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제대로 화를 내면 듣는 사람도 개운합니다. 드러난 모습과 진실이 항상 일치되는 건 아닙니다.

 분노, 사랑받고 싶어하는 만큼 분노가 일어납니다. 늘, 어느 지점에서도 점하나 찍지 못하고 왔다갔다하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 마음, 그 원인이 남편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있습니다. 그 눈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밖을 향해 있습니다. 늘 그게 문제입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지만, 그래도 아내로서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한달동안 남편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그냥 자기자신으로 사십시오. 그런 실험을 하면서 이분은 자기자신이 커다란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일 큰 배움은 자기자신으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깨어있는것, 지금 올라오는 열등감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만나는 것이 깨어있는 것이고, 그것이 자기자신을 존중하는 것이고 믿음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나면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다보면 '다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되고, 그 다름이 주는 조화를 누릴 수 잇게 됩니다.


▶진실로 받아들이면, 그냥 '그것'입니다. 계속 힘든게 오니까 언제까지 이것을 치러야 하나하는 질문을 했는데, 제가 '언제까지'이것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또오나' 이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면 '또오나' 이게 없습니다. 저는 깨닫고 나서도 내면 아이를 치르고, 망상을 하지만 전혀 거기에 물들지 않습니다. 한의사 한분이 제게 말했습니다. 지금 몸에 나타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암'도 좋은 것이다고 말합니다. 세포의 종류가 두종류가 있는데 육체가 돌아가다 내부에 무엇인가 막히면 자기 스스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게 암덩어리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정말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 몸에 무엇인가 막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하나의 정보로 받아들이는, 그러면서 식습관등 원인을 찾아 제거하면서 자기 몸과 소통하다보면 암이 저절로 풀어지는, 그래서제가 말했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그것이 육체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이것을 받아들이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나에게 고통을 주거나 나를 해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나이니까요. 그러나 이것을 에고는 모릅니다. 이런 이해가 오면 다만 그냥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삶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됩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나를 살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진아의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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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길었던, 산청에서의 아침까지만해도 아직 겨울이야 했는데,

오후가 되면서 날이 완전히 풀려버렸습니다.


즐거운 봄~ 나날들 되시길.....


그림자 짙어지는 4월에 뵙겠습니다.



댓글목록

yhk5422님의 댓글

yhk5422 아이피 (211.♡.186.244) 작성일

이렇게 여름가지님 자상하게 글로 정리해주시니 큰 은혜로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03.138) 작성일

네, 감사합니다.

관리자님의 댓글

관리자 아이피 (180.♡.130.121) 작성일

여름가지님의 글과 사진에...늦은 시간이 되어버렸네요.
역시 좋은 사진은, 우울함과 친구하면서 찍은 사진인가 봅니다. 종종 부탁드려요~

산수유가 여름가지님의 걱정하는 마음에 힘을 받은듯요.
산수유의 간난을 이기고 뽑내는 마음과 여름가지님의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여기 서울도 봄입니다.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03.138) 작성일

'여기 서울도 봄입니다'란 말이 참 좋습니다~~~,
산청도 봄이고,
제 마음도 봄이고,
여기 완도도 벚꽃이 피어버렸어요,
하루종일 내리는 봄비맞으며.......

토토님의 댓글

토토 아이피 (59.♡.103.209) 작성일

보다의 명사형이 '봄'이라니. 너무 멋진 표현인걸요!!!!!! 오!!!!!!

- 멋진건 멋진거고, 점심먹고 배부르니 잠와 죽겠는 직장인 1人 ㅠㅠ...뭘 해도 나른하니 잠오네요.
이놈에 봄봄봄. 너무 좋구로 ㅠ.ㅠ ㅋㅋㅋ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83.♡.203.138) 작성일

영어로는 스프링, 튀어 오른다는~~~~

문득님의 댓글

문득 아이피 (211.♡.90.97) 작성일

최근 어느 교육에서 '보다'의 명사형이 '봄'이라고, 순수한 우리 말이라고 배웠었는데, 그 말을 가지님 때문에 다시 한 번 보게되네요.
여름, 가을, 겨울도 얘기 했었는데....기억이...
그동안 옛날 홈페이지만 보면서, 왜 이렇게 아무도 관리를 안하고, 강의를 올리지 않을까 했었는데...나의 착각이었네요!!

작년 12월부터 '진.퇴.양.난'의 축복 속에 지금껏 새벽잠을 설치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게는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극심한' 공포심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참담한 마음으로 경험하고 있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니 두렵고, 말자니 초라한 자신이 슬프고....진퇴양난!!의
'죽여주는' 축복 속에서 봄을 보고 있습니다!

데미안에서 동네 불량배의 조종에 어쩔 수 없이 끌려다니며 극심한 심적 고통 속에 열벙을 앓는 싱클레어.
가 바로 '나' 임을 봅니다.
언젠가 다가 올 '데미안'을 꿈꾸며 오늘도 맑은 봄날을 아무렇지 않은 듯,무심한듯,
밥 잘먹고 있습니다^^

여름가지님의 댓글의 댓글

여름가지 아이피 (117.♡.178.162) 작성일

문득님,
참 오랜만이네요,
이전에 문득님이 오랫동안 소식이 없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봄'의 어원이 '보다'였군요. 저는 그냥 그러지 않을까 상상한것인데, 정말 그렇다니.......

죽여주는 고통속에 있으시군요.
그래도, 그것에 깨어있으시니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고통에서 깨어있을때 그것이 주는 어떤 명료함, 살아 있다는 느낌,
저는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이 좋더라고요.....

화이팅!!!입니다. 시작된 것은 끝나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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