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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만난 사람 - 이 양반 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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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둥글이 (117.♡.185.66) 댓글 0건 조회 15,978회 작성일 13-06-1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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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1년 7월 초 밀양 가는 길에 필명 아제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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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만나 계곡에서 창? 을 뽑던 아제님]

이분은 흔히 말하는 ‘도’통하신 양반이었다. 여기서의 ‘도’라는 말은 ‘불교, 노장’ 등을 아우
른 ‘존재의 원리’에 관한 철학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절대다수의 ‘도통’했다고 일컬어
지는 인간들이 회의와 허무, 관념론에 빠져서 ‘마음을 비우라’는 따위의 얘기만 해대면서 극
단적인 개인주의에 빠져 있는 터이다.

그들의 앎에 대한 무한 긍정과 확신은 종교수준에 이르렀는데, 그 이유는 첫째로는 그들의
철학 자체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렇게 해야 ‘사기 치
기’가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도통한’ 이들이 그 모양 그 꼴을 하고 있음과 달리 이분은 세상의 문제
에 대한 실질적인 고민까지를 잘 조합한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설명은 처음 만난 직후에
썼던 다음의 글로 대신한다.


하여간 2년간 서로 바빠서 못 만나다가 광양에서 곡성 가는 중에 약속을 잡아서 구례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는 구례군 다압면의 어느 산골에 집을 지어서 살고 있었는데, 기름 달랑
거리는 차를 끌고 구례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나타났다. 2년 새 많은 일이 있었는지, 머리
가 하얗게 쇠어 있었다.

어머니랑 함께 살기 위해서 50평생 처음으로 집을 만들었는데 어머니는 지네 한 마리가 방
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해서 안 오신다고 거절하셨단다. 아제님은 떠돌이로 그냥
여기저기 발 닿는 데로 묵어 살려고 하던 터 어머니라도 봉양하려고 겸사겸사 집을 만들었
는데 어머니가 안 오신다고 하니 갑자기 집을 지은 목적이 붕 떠버린단다. 그래서 그냥 떠
나버릴까 고민 중이란다.

50넘은 아제님이 ‘집을 짓고 살고 있음을 후회’하는 이유를 보통사람들은 알 수 없을 것이
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조금이라도 큰 차에 조금이라도 큰 집을 지어서 거기에
끊임없이 뭔가를 쌓아 두고 그 쌓아 놓은 것의 양에 따라 ‘성공’을 가늠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보통사람의 시야로 이단아 아제님의 삶이 제대로 보일 리 없다.

아제님의 ‘집에 대한 생각’은 단순 명료했다. 어딘가에 머물게 되면 그에 따라서 편해지고
생각이 죽어가기 시작하니, 결국 그에게 집은 정신의 무덤인 것이다. 하여 본인 생의 가장
큰 실패 중에 하나를 집을 지은 것으로 규정하고 집을 버리고 전과같이 떠돌 것인지를 고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둥글이는 유랑 기간 동안에는 이렇게 떠돌더라도 나이 50전에는 어딘가에 정착해서
나만의 세상에 푹~ 파 묻혀서 나태하게 살고자 했다. 그런데, 아제님은 아직까지도 자신을
세상에 내 던지고자 하는 열정이 있으셨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제님은 유명세를 타는 몇몇 고승보다 내공이 깊음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먹고
살 걱정 없이 원적외선 나오는 황토방에서 군불때가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읊조
리는 것은 ‘옵션’지만, 집 없이 세상 속에서 자신을 던져 살아온 길에서 그가 했던 말들은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2년 전 그날과 같이, 거언 12시간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인간과 자연, 사회, 삶에 대
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그중에서 아제님이 가장 힘주면서 했던 중요한
이야기는 ‘사회’에 대해서 좀 알게 되었다면서 ‘아무리 도를 잘해도’ 그것은 50%이고 세상
에 대한 고민도 병행해야 함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세상은 없다. 우선 깨달아야 한다.”는 따위의 관념론에 빠져서 하나마나한 소리들
을 하고 자빠져 있는 ‘도판’의 사람들에게 아제님이 전하는 가장 진솔한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면 2년 전 그때부터 아제님은 ‘도’의 문제를 ‘현실’에 접목시키려고 무던 고민을 해왔던
터였다.

도를 하는 이들 중에 아제님처럼 세상의 문제에 대해서 진솔한 고민을 하고, 사회적 약자의
아픔에 ‘감성적 공명’을 하는 이를 일찍이 본 일이 없는데 그 대표적인 사건이 작년 대선의
결과에 대한 아제님의 반응인 듯하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 확정 후 대성통곡을 하며 몇 달
을 보냈다고 한다. 아예 움직이지도 않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절규를 토해냈던 이유로 다
리뼈에는 심이 박혀 있을 정도였다. 그의 절규를 강변하는 듯 현관 입구에는 술병들이 즐비
하게 쌓여 있었다.

아마 흔히 말하는 ‘도’를 하는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
다. 왜냐하면 ‘한국적 도’는 초월론, 관념론, 유아론에 기반 되어 있는 이유로 ‘광대무변한
우주의 변화’도 아닌, ‘하잘 것 없는 정치판’의 문제에 그리 오열을 하고 있을 그의 모습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정상’이 아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 ‘가장 낮고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왜냐고? 그 순간
서울 대한문 앞의 ‘농성촌’에는 (23명 희생자들의 분향소를 세운) 쌍용노동자, (철거민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리고자 아직도 싸우는) 용산유가족, (국가공권력에 의한 폭압적 진
압에 의해서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살을 에는 한 겨울의 추위를 천막하
나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보수정권의 재집권은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400km떨어진 산골 마을에서 아제님은 그들의 고통에 공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세상과 공명하는 남다른 감성 때문인지 그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순서가 잘 못
되었다고 투덜댄다. ‘평천하’하고자 하는 심정, 즉 세상에 대한 따스한 마음으로부터 ‘수신’
의 필요가 생겨나야지, ‘나를 먼저 닦아야 한다’며 ‘수신’부터 시작하는 것은 속세의 ‘성공’
과 뭐가 다르냐며 ‘도’닦기 위해서 세상에 대한 이해를 잃은 이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
가 사는 세상은 ‘옳은 말을 대접해주는 세상’이 아니다.

아무런 검증 가능성이 없는 확신에 찬 그럴싸한 씨불임이, 사기질을 쳐댈 방황하는 영혼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이 도판. 이곳 도판에서 아제님의 균형감각과 논리적 판단력, 따스한 감
성, 반교조주의는 스스로를 더더욱 그를 고립시키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사회에 적응해
서 일상을 살 의지도 없는 그는 죽었으나 죽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방황하고 있
는 듯 했다.

머리가 굳어 자기 확신만 되뇌면 대접을 받을 나이 50. 그 나이에 질풍노도를 겪는 그의 모
습을 보며 나는 진정한 젊음을 보았다. 그러고 보면 반백이 된 그의 머리는 그가 늙지 않으
려고 애쓴 징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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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아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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